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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사학' 오명 상문고, 제자리로 돌려놓고 떠나는 '꽃박사'

송고시간2016-05-15 08:37

원로 원예학자 상채규 박사, 상문학원 이사장 마치고 퇴임"학교는 설립자·재단 소유 아닌 교사들 것…자율성 있어야 '師道' 살아나"

상문고 상채규 이사장
상문고 상채규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서울 상문고의 학교법인인 상문학원 상채규 이사장이 4년의 임기를 마치고 최근 물러났다. 평생 꽃을 연구해온 원예학자인 그는 2012년 상문학원 이사장을 맡아 90년대 초반 '비리사학'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오랜 시간 학내분규에 시달려온 상문고를 정상화하는데 힘썼다. 2016.5.15.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이사장이 되고 학교를 들여다보니 오랜 학내분규로 직원 간 반목이 심했어요. 교직원 상조회도 두 개로 갈라져 운영되고 있더군요. 먼저 상조회의 통합을 시작했어요.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어느덧 잊혀졌지만, 상문고는 한때 대한민국 사학비리의 '대표선수'쯤 됐다.

강남의 이른바 8학군에 자리해 중산층 이상의 유복한 학생들이 다니던 이 사립학교는 '일류고'로 꼽혔다. 그러나 이런 영예의 타이틀 이면에는 학부모로부터 거액의 찬조금을 받아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조작하는 등 추악한 비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상문고 교장은 학교의 현직 교사들을 동원, 자신의 자녀에게 비밀과외를 시키기도 했다. 대입 원서를 쓸 때 학생들은 학급당 50만원씩 '수수료'를 걷어 학교에 갖다 바쳐야 했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자 촌지는 수표에서 현금으로 바뀌었다. 이런 불법 촌지와 후원금은 부패 교장과 비리 교사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상춘식 전 교장은 1986∼1994년 학부모로부터 거둔 찬조금 15억6천만원과 보충수업비 6억원을 유용하고 내신성적을 조작한 혐의 등으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온갖 학내 비리를 참다못한 일부 양심적인 교사들이 뒤늦게 폭로에 나선 것이 상문고 사태의 시작점이었다.

상문고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희대의 '부패사학'이라는 오명은 20여 년이 흘러서도 계속 상문고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사학비리를 소재로 한 영화 '두사부일체'가 상문고를 모델로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마저 나왔다.

이런 상문고를 정상화하는 데는 양심적인 교사들이 주요 역할을 했지만, 후유증을 치유하고 갈등을 봉합해 학교를 현재의 반열에 올려놓는데는 상문학원 상채규(78) 이사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비리 사태 이후에도 계속된 학내 분규로 18년간의 관선 이사체제가 무너진 2012년 이사장에 취임했다.

최근 4년의 임기를 마친 그에게 더 있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끝내 고사했다.

상 이사장은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고, 젊고 유능한 분에게 이사장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물러난 뒤에는 젊고 유능한 분이 상문고 발전에 헌신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 꽃밖에 모르던 원예학자, 가문 요청에 '구원투수'로

사학 운영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평생을 꽃 속에 둘러싸여 살아온 원예학자였다. 이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대구가톨릭대 강단을 오랜 기간 지켰다. 꽃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화훼학과를 한국 최초로 독립된 전공학과로 개설하기도 했다.

평생 '꽃박사'였던 그가 어떻게 과거 비리로 점철됐던 사학의 운영을 도맡게 됐을까.

상문고는 원래 목천 상씨 문중이 설립한 학교지만, 1994년 당시 비리와 전횡으로 구속된 상춘식 전 교장 측이 종친회의 권력관계를 악용해 법인을 개인 소유로 둔갑시켰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정상화 이후 문중이 설립한 학교가 맞다는 해석을 내렸고, 관선 이사체제가 종료된 뒤 목천 상씨 가문이 설립한 상문고를 되살리기 위해 종친회가 나섰다. 마침 상 박사가 종친회장을 맡고 있었고, 뛰어난 인품을 지녔다고 알려진 그에게 종중은 상문고의 운영을 맡겼다.

"이사장이 되고서 들여다보니 (상문고는) 설립되자마자 엉뚱한 사람이 자기가 세운 것처럼 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바람에, 정체성이나 교육이념 같은 것도 없었어요.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가 그러면 안 되죠. 건학 이념 재정립에 나섰습니다."

상 이사장은 먼저 부패와 전횡을 일삼던 당시 이사회가 바꿔놓은 동인학원이라는 이름을 상문학원으로 원상 복귀시켰다. 조선 명종 때 영의정과 좌·우의정에 16년 재임한 성안공 상진(尙震)의 철학을 계승, '관용과 청렴, 덕성'을 강조하는 건학 목표를 내세웠다.

2년 전부터는 권리 이전에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성인이 되라는 의미에서 학생들의 성인식을 열어주고 있다고 한다.

건학 정신을 새롭게 다듬은 뒤에는 갈가리 찢긴 학교를 추슬러야 했다.

"사태 이후 학교분쟁이 계속됐고, 선생님들끼리 반목하고 다투는 바람에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한 학교 교직원들인데 상조회도 따로 운영했죠. 사람이 일을 하려면 마음이 안정돼야 하는데 학생들 보기도 그렇고…"

2년의 노력 끝에 상조회 통합을 이뤄냈고, 학교는 교사들의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교장에게 학교 운영의 전권을 일임했다.

"이사장을 맡고 보니 이런저런 청탁들도 많더군요. 그래도 교사 채용과 학사운영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어요. 학교는 설립자나 재단의 것이 아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것입니다. 보통 사립학교는 법인이 학사운영에 막 개입하고 그런다던데, 그렇게 하면 '사도'(師道)를 지킬 수 없지요."

◇ "갈라졌던 학교 통합에 힘써…선생님들 열정 남달라 감명받아"

조직이 안정되고 보니 학교가 새로 보였다.

"처음 이사장으로 올 때는 사립학교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 선생님들이 아주 열성적이고 능동적이시더군요. 감명을 받았어요.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는 공립학교 교사들과 달리 한 학교에 오래 계신 사립학교 교사들의 장점은 바로 학교와 전통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점입니다."

상 이사장은 조직의 안정과 건학 목표 재정립이라는 취임 당시의 목적은 이뤘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학교법인의 재정적 안정을 욕심만큼 이루지는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개교 이후 20년까지는 전 교장이 치부하기 바빠서 그랬고, 그 이후 20년은 주인 없이 관선 이사체제로 운영돼서 재정 안정을 꾀할 환경이 못됐지요. 우수학생들을 자사고와 특목고로 다 뺏기는 상황입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특별활동을 제공하고, 교사들의 복지를 높여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일반 사립고는 재정 안정이 필수적이예요."

법인소유 토지에 있던 골프 연습장이 철거당하고 나니 재단의 수익이 크게 줄었지만, 규제에 묶여 빈 땅을 수익용 사업에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임기 말까지 수익 창출 방안을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사장 취임 뒤 세운 목표 중 수익을 내지 못했다는 것 빼고는 나름대로 만족합니다. 제가 물러난 뒤에는 젊고 유능한 분이 오셔서 더 활동적으로 법인을 운영해서 상문고 발전에 헌신해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어느 원예 전문지에서 10여 년 전 그를 인터뷰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천천히 읽어보니 "세상에는 꽃도 나무도 가지가지이지만, 좋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자의 눈에는 평생 '꽃 박사'인 상채규 이사장이 상문고를 떠나며 이 학교 학생과 교사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읽혔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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