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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아들딸 빚 대신 떠안고 칠십노모 법원에…'불효 파산' 백태

송고시간2016-05-15 07:55

고령층 탕감 수월한 점 악용…부모는 자식 위해 알고도 눈감아줘 동조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신용카드 빚 4천500만원을 갚지 못해 지난해 4월 파산 선고를 받은 오남순(가명·72) 할머니. 법원은 오 할머니의 빚을 전액 탕감해줄지 판단하기 위해 기록을 검토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할머니의 카드 명세서를 보니 피부과에서 고가의 미용 목적 시술을 받고 성형외과에서도 큰돈을 쓴 것이다. 백화점에서 젊은 여성 브랜드 옷을 사는가 하면, 한 사업체에 부과된 국세 700만원을 카드로 대신 내기도 냈다.

오 할머니가 그렇게 긁은 액수는 월평균 500만원에 달했다. 뚜렷한 직업과 소득이 없는 70대 노인의 소비라 하기엔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돈을 쓰고 할머니에게 떠넘긴 게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실마리는 의외의 대목에서 풀렸다. 오 할머니 아들이 수입차를 타고 면담 조사에 따라온 걸 법원 측이 목격한 것이다. 홀어머니가 파산한 점을 고려하면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법원은 할머니에게 "카드를 실제로 쓴 사람이 누구냐"고 추궁했다. 처음엔 버티던 할머니는 끝내 "아들과 딸이 어려워서 대신 썼다"고 한숨을 쉬며 실토했다. 법원은 자녀들의 사용액을 도로 반환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들은 따르지 않았다.

결국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초 오 할머니의 채무 면책 신청을 불허했다고 15일 밝혔다. 결정이 확정되면 빚 4천500만원을 다시 갚아야 한다. 할머니는 불복해 항고한 상태다.

오 할머니의 사례처럼 자녀가 쓴 빚을 대신 끌어안고 탕감을 위해 법원을 찾는 이른바 '불효파산'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연세가 많고 수입이 적은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면책 결정을 수월하게 받는 점을 악용한 신종 시도다.

할머니와 비슷한 시기 카드사에서 빌린 돈을 자녀에게 송금하고 파산 신청을 한 중년 여성(59)도 같은 이유로 면책이 불허됐다.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커피숍이나 아동복 브랜드에서 주기적으로 돈을 쓰고 파산을 신청한 경우도 있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의 소액 결제 기록이 빼곡한데도 자신의 빚이라 주장한 노인도 있다. 모두 부모를 대신 파산시키려는 자녀를 위해 기꺼이 불효파산에 이용당해주는 사례다. 법원 관계자는 "잘못된 자식 사랑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이 파산을 선고한 1천727명 중에선 65세 이상의 '노후파산'이 4명 중 1명 꼴인 428명에 달했다. 그 중 일부는 이런 불효파산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법원은 노인이 이례적 채무가 있을 경우 기록을 더 세밀히 검토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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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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