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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막말'·'범죄자 처형' 대선주자 승리에 소용돌이 예고(종합)

대대적 범죄·부패 척결 나설듯…사법체계·의회 경시에 '공포정치' 우려도
美에 목소리 내고 中에 강온전략 구사 전망…거친 언사로 외교 갈등 소지

(마닐라=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사회정의 구현인가, 독재와 공포정치의 부활인가.

9일 치러진 필리핀 대선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시 시장이 사실상 당선됐다. 그가 오는 6월 말 대통령에 취임하면 필리핀 정치·사회·외교정책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두테르테 시장의 성향과 공약을 고려할 때 안으로는 대대적인 범죄 소탕과 부패 척결에 나서고 밖으로는 전통적인 동맹 등 친소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설적으로 크게 낼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법과 인권을 무시하는 언행, 취약한 정치적 기반은 그의 단점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강하게 휘두를 경우 기존 정치세력과 정면 충돌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긴장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정교한 접근이 요구되는 외교 무대에서는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필리핀 '막말'·'범죄자 처형' 대선주자 승리에 소용돌이 예고(종합) - 2

◇ 범죄·부패척결 최우선…'정의 구현이냐, 공포정치냐'

두테르테 시장은 집권 시 '취임 6개월 안에 범죄 근절'이라는 공약 이행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둘 것으로 전망된다. 강력 범죄가 만연한 필리핀에서 이 공약 덕분에 대권을 넘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22년간 시장으로 재직한 남부 다바오시를 범죄가 들끓는 도시에서 필리핀의 가장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시킨 경험을 국정에 적용한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그는 선거 때 법과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경찰관 3천 명을 증원하고 급여를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2015년 상반기 필리핀에서 발생한 살인, 강간, 절도 등 중대 범죄는 35만여 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37% 급증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런 범죄에 대한 해법은 강력한 단속과 처벌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바오시 시장 시절 사법절차를 무시하고 자경단을 비밀리에 운영하며 범죄자를 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초법적인 범죄 척결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대통령이 돼서도 국가 전체의 사법체계를 무력화하는 행보를 할지는 불투명하지만 그는 선거기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정의구현을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군인과 경찰이 직권 남용으로 기소되면 사면하겠다고 약속, 범죄자 즉결 처형은 아니더라도 인명 피해를 불사하는 공격적인 단속과 인권 침해가 예상된다. 그는 "하루 1천 건의 사면장을 발부하겠다"는 말도 했다.

사형제 부활을 주장하는 두테르테 당선인의 범죄 소탕전이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인권단체와 가톨릭계의 반발이 전망된다.

인구의 83%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은 1987년 사형제를 없앴다가 1993년 살인과 아동 성폭행, 납치 범죄에 한해 이를 부활했으나 2006년 다시 폐지했다.

그는 "깨끗한 정부를 만들겠다"며 곳곳에 찌든 부패 척결도 예고했다. 유세 때 공무원의 항공기 비즈니스석 이용도 금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정책을 밀어붙이는 그의 스타일이 '공포정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계엄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서민층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중앙 정치무대 경험이 별로 없고 유력 정치가문 출신이 아닌 만큼 정책 입안과 추진 과정에서 기득권층과의 갈등이 예상된다. 그가 연방정부 구성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의회 해산을 경고한 것은 자신의 정치 기반이 약한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대선에서 두테르테 시장과 1위를 다툰 그레이스 포 상원의원은 유세장에서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일을 못할 때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당장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범죄 소탕에 전념해 인프라 개발과 빈곤 탈출 등 경제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필리핀 국민의 절반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4분의 1가량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것이 잦은 범죄 발생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어 경제 성장과 분배 정책 등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그는 새 정부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불안감을 의식한 듯 대선 투표가 끝난 뒤 외국인의 기업 지분 제한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필리핀에서는 대부분 산업에서 외국인 투자 지분이 40%로 제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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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경험' 외교무대 '시험대'…中에 강온전략 예상, 동맹 美와 갈등 소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첨예하게 맞선 필리핀은 두테르테 시장 집권 시에도 '친미, 반중'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온도 차의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두테르테 시장은 현 베니그노 아키노 정부와 달리 중국과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고 공동 자원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미국 등 동맹국과의 다자 대응이 2년 안에 결실을 못 낼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중국과 양자 대화가 이뤄지면 마닐라 철도 건설 등 인프라 개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필리핀에 우호적인 국제 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분쟁 판결이 나왔을 때 중국이 이를 거부한다면 제트스키를 타고 남중국해 스카보러 섬(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에 가서 필리핀 국기를 꼽고 주권을 선언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그럴지는 불투명하지만 국민의 강한 반중 정서를 의식한 발언이다.

그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 공조 체제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의 열악한 군사·경제 사정상 미국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필리핀이 24년 만의 미군 재주둔을 위해 5개 군사기지를 미국에 제공하는 양국의 합의 이행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그가 거친 언행과 직설적인 화법을 자제하지 못하면 외교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유세 때 과거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피살된 호주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해 호주와 미국 대사의 비판을 받자 "입을 닥쳐라"고 말하며 외교관계 단절까지 거론했다. 그는 파장이 커지자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뿐 외교관계 단절 발언은 와전됐다고 해명했다.

새 정부가 범죄 소탕 과정에서 재판 등 사법절차를 무시하고 인권을 유린을 할 경우 대외정책에서 상대국의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미국과의 갈등도 예상된다.

미국이 필리핀에 대한 군사·경제 지원 조건으로 인권 개선을 요구하고 새 정부가 이에 반발하면 양국 관계가 소원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외교 경험이 없는 두테르테 시장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을 때 실제 무대에서는 어떤 행보를 할지 주목된다.

kms123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5/10 02:0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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