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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독재의 추억' 짙은 필리핀…"'강한 지도자' 원한다"

범죄·가난 염증…정·부통령 후보 '필리핀판 트럼프'·마르코스 아들에 환호
"모두 확 바꿔야 한다" vs "공포·인권 탄압 부르는 독재 부활 막아야 한다"

(마닐라=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모든 것을 확 바꿔야 한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처럼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지도자가 필요하다."

7일 오후 필리핀 수도 마닐라 시내는 30도를 훨씬 웃도는 무더위와 경쟁하듯 막판 선거 열기가 뜨거웠다.

이날은 오는 9일 치러지는 필리핀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의 마지막 공식 선거운동일로 후보 진영마다 표심을 잡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도로 중앙분리대와 길가에는 만국기처럼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등의 포스터가 줄줄이 걸려 있었고 각 후보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하는 등 선거 열기를 물씬 느끼게 했다.

이번 선거에서 잇단 막말과 함께 법보다 '주먹'을 앞세워 '필리핀판 트럼프', '징벌자'로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시 시장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권에 도전하는 그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30%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그레이스 포(47) 상원의원, 마누엘 로하스(58) 전 내무장관 등 다른 후보들을 10%포인트 넘게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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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 마닐라 리살공원 '퀴리노 그랜드스탠드' 광장에서 열린 두테르테 시장의 마지막 유세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은 필리핀 대통령이 취임식이 열리는 유서 깊은 장소로, 두테르테 시장은 이미 대통령에 당선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현지 언론은 약 30만 명의 지지자가 몰렸다고 전했다.

지지자들은 "모든 범죄자를 죽이겠다"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취임 6개월 안에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두테르테 시장에 환호했다.

현장에서 만난 레이 퀴암바오(44·운전사)는 "두테르테 시장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며 "범죄자를 죽이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현 아키노 정부는 범죄와 부패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다른 후보와 달리 두테르테 시장은 마약 등 범죄와 부패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키노 대통령이 초법적이고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두테르테 시장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같은 독재자가 될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두테르테 시장 지지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티토 빌리아르 리알(62)은 "지금은 부정부패도 심하고 범죄도 잦고 먹고살기가 어렵다"며 "마르코스 시절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두테르테 시장이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같은 '지도력'을 발휘할 것으로 확신했다.

부통령 선거에서도 '독재의 향수'가 퍼지고 있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58) 상원의원이 여당 후보 레니 로브레도 (52) 하원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장년층은 물론 일부 젊은 층도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에게 우호적이다.

존 카를로 아순션(30)은 "'봉봉'(마르코스 주니어 의원 애칭)은 훌륭한 지도자로 지적이고 뛰어난 의사 결정권자"라며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 시절의 책임을 그가 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아순션은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이 25년간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지역 개발 등 많은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아순션은 "어머니(67)로부터 마르코스 전 대통령 집권 기간에 경제 개발이 이뤄졌다는 말을 들었다"며 "당시 인권 유린은 잘못된 일이지만 지금 필리핀은 그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필리핀이 독재자 마르코스 정부를 무너뜨린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 30주년을 맞았지만, 민주화보다는 눈앞의 생계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아키노 대통령이 집권한 2010년 이후 필리핀이 6% 넘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고 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등 민생이 어렵자 마르코스 개발 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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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독재 부활'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아키노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는 두테르테 시장과 마르코스 주니어 의원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고 유권자에게 연일 호소했다.

포 의원을 지지하는 오르손 살바도르(22)는 "범죄 용의자를 재판도 없이 죽이겠다는 두테르테 시장의 발언은 계엄령을 선포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살바도르는 "부정부패와 범죄 척결, 일자리 창출, 인플레이션 해결이 시급하지만 두테르테 방식으로는 풀 수 없다"며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만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대생(20)은 "우리에게는 인권과 대외 관계도 중요하다"며 두테르테 시장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현지 여론조사업체들은 부동표가 20%를 넘는 것으로 추산하며 선거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 결과대로 당선인이 결정될지, 다른 후보들이 뒤집기에 성공할지 마닐라에서 만난 시민들은 그 어느 선거 때보다 궁금해했다.

kms1234@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5/08 09:0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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