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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입원하고, 일자리는 없고"…조선업 실직 가장의 '한숨'

송고시간2016-04-30 08:00

"원청보다 훨씬 힘든 협력사 동료들, 못 버티고 뿔뿔이 흩어져"

사내협력사 대표 자살까지…"조선업, 정부의 적기 지원 필요"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 "자식들은 아직 어린 데다가 큰 아이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어요. 그런데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어요."

울산의 현대중공업그룹 사내협력업체에서 근무한 A(38)씨는 요즘 집과 병원을 오가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장으로서 아내와 함께 두 남매를 키우며 지난 10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A씨. 하지만 올해 2월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회사가 경영 적자로 어려움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는 재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여의치 않았다.

"청년 취업도 절벽이라는데 나이가 들어서 일자리 찾으려니 많이 힘드네요."

그나마 폐업하고 도산한 업체에서 임금과 퇴직금까지 받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은 다른 협력사 근로자보다 나은 편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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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 수입이 없어진 상황에서 큰 아이마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A씨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비슷한 시기에 A씨 동료 직원 20여명도 같은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그는 "모든 협력사가 요즘 최악의 상황을 힘겹게 버티고 있다"며 "일감이 크게 줄고 임금마저 삭감되면서 회사 내에서는 퇴직하려는 직원을 굳이 말리지도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회사를 떠난 동료 근로자 중 부산과 대구, 포항 등 다른 지역에서 온 근로자는 고향으로 돌아간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일자리를 잃고 이렇게 떠나는 근로자들로 인해 그동안 '조선 왕국'으로 불렸던 울산 동구의 인구까지 감소하고 있다.

2014년 3월 17만8천200여명이던 동구 인구는 2015년 3월 17만6천400여명, 올 3월 17만5천여명으로 줄었다. 조선업 경기가 조만간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같은 인구감소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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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떠난 동료 중에는 '조선업계에 더는 미래가 없다'며 일찌감치 다른 직종에 취업하기 위해 새로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나마 젊은층에 속하는 동료들이다.

A씨는 "조선업계에서도 원청에 의존하는 사내협력사는 더욱 힘들다"며 "협력사의 일 자체가 힘들고, 월급은 너무 적어 누가 오겠느냐"고 토로했다.

원래 힘든 직종이지만, 3년 전부터 불어닥친 조선경기 침체로 근로 조건과 근무 환경이 더 악화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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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실직 후 지인을 통하거나 인터넷 등을 뒤지면서 2개월 넘게 직장을 다시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청년 취업대란 속에 40대를 앞둔 자신을 받아주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조선업종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배운 것이라고는 조선 분야 일이 전부였기 때문에 또 조선업계 쪽 직장을 알아보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한숨만 쏟아냈다. 그는 "대기업 등 원청업체 취업은 생각도 못 하고 중소 조선업체에 취업하려고 하지만 자리가 없다. 있는 사람도 내보내는 마당에 새 일자리를 찾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빨리 조선경기가 회복돼 많은 사내협력사의 숨통이 트였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경영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폐업하거나 도산한 조선 협력사 대표들은 언론과의 만남을 기피했다.

어렵게 만난 사내협력사의 한 대표는 공장 문을 닫고 떠난 전 대표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폐업하거나 도산한 업체 대표들은 울산을 떠나거나 연락이 끊기고, 일부는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고 말한 뒤 "어느 협력업체 대표가 또 자살하는 것 아닌지 걱정까지 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제 울산에서는 지난해 12월 17일에는 현대중공업 협력사 대표가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는 "자금 압박으로 직원들에게 임금을 제때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2002년부터 선박 블록을 조립하는 협력사를 운영했지만, 최근 조선경기 불황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협력사 대표는 "우리나라 산업에서 고용 창출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조선업종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서 적기에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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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해양조선 사내협력사협의회는 최근 조선 협력사를 살리기 위한 대정부 요구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경영자금 지원, 세금감면, 세무조사 보류, 장애인 의무고용 부담금 유보, 외국인 근로자 고용 확대, 최저임금 동결 등 9가지를 요구했다.

한편,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울산에 본사를 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사내 협력업체 34곳이 문을 닫았고, 이 때문에 근로자 3천400여명의 임금 197억원 상당이 체불됐다.

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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