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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숙 칼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송고시간2016-04-26 07:31

<현경숙 칼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2

(서울=연합뉴스) "내가 만일 병 속에 시간을 저장할 수 있다면/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영겁이 지나갈 때까지 매일을 저장할 거예요/그 시간을 당신하고만 지내면서요." 미국 가수 짐 크로스의 히트곡 '병 속의 시간'(Time In a Bottle)의 노랫말 일부다. 애처가였던 그는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이 가사를 썼다고 한다. 영원히 아내와만 지내고 싶다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아내를 사랑하는 한국 남편들의 진담 같은(?) 좌우명들을 잠깐 보자. 인명재처(人命在妻; 남편의 목숨은 아내에게 있다), 지성감처(至誠感妻; 지극한 정성에 아내도 감동한다), 개과처선(改過妻善; 잘못을 뉘우치고 아내의 선처를 기다린다), 사필귀처(事必歸妻; 모든 일은 아내의 뜻에 따른다) 등이다. 이를 보면 아내 사랑에서 크로스는 한국 남편들을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

선거가 끝나고 나니 국회의원과 아내의 공통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남편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말이 많다, 아는 체도 하지 않다가 필요하면 아양 떤다, 바빠 죽겠다고 하는데 매일 노는 것 같다, 말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 등이 공통점으로 꼽혔다. 아내가 국회의원보다 나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밥은 해 준다'이다. 국회의원이 아내보다 나은 점도 있다. '4년 마다 갈아치울 수 있다'이다. 으레 농담 속에는 뼈가 있기 마련인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이런저런 것들을 보면 남편에게 아내는 끔찍이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갈아치우고 싶기도 한가 보다.

윤진하(연세의대)·강모열(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팀이 최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직장의 근무시간이 긴 아내와 함께 사는 남편일수록 우울한 증상을 보일 위험이 크다고 한다. 아내가 무직일 때 우울한 남편은 7.1%에 불과했지만, 아내의 근무시간이 주 40시간 미만일 때 10.7%, 주 50시간 이상 60시간 미만일 때 11%, 주 60시간 이상이 되자 13%로 점차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 조사 결과는 크로스의 노래처럼 아내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남편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일까.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 같은 한국 경제와 마찬가지로 요즘 가계 경제가 말이 아니다. 눈덩이 가계 빚, 가장의 조기 퇴직,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전셋값, 청년 실업과 캥거루족 자녀, 저임금 아내, 고령화, 노인 빈곤 등으로 도무지 집안이 편치 않다. 가계를 짓누르는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천200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90%에 육박하는 규모다. 온 국민이 1년 내 벌어서 가계 빚을 갚는다고 하면 남는 게 거의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1년 동안 늘어난 빚만 120조 원 이상이다. 가계 빚 급증은 천정부지의 전셋값이 원인이었다. 은행 문턱이 높아 금리 부담이 큰 저축은행에서 빌린 돈도 13조6천936억 원으로 9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350만 명 이상이고, 가처분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중이 40%를 넘는 한계가구가 158만 가구다.

빚이 많은 집일수록 부채는 더 가파르게 증가한다고 한다. 가계부채는 부동산경기가 나빠지면 금융권 위기로 파급돼 한국 경제를 좌초시킬 수 있는 '뇌관'이 될 정도로 위험 수위다. 2~3년 뒤에는 가계부채로 인한 내수 위축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다 사상 최고 수준인 12%를 넘는 청년 실업률, 비정규직 청년들은 가정 내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될 조짐마저 보인다. 집값은 수억 원에 이르는 데 비해 소득 감소로 인해 집 살 엄두를 내지 못하는 20~30대는 부모에게서 얼른 집을 물려받길 원한다고 한다. 평생 일군 재산이라고 해야 집 한 칸이 전부여서 집에 큰 애착을 가진 부모 세대와 달리 자녀 세대는 부모의 집을 팔아 사업 밑천이나 생활비로 삼고 싶어 한다고 한다.

가계가 어렵다 보니 아내들이 집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아내들의 긴 근무시간은 생활고의 또 다른 얼굴이고, 남편들의 우울은 팍팍한 가정 경제의 결과물일 것이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저성장으로 인해 항시적으로 발생하는 고용불안, 청년 실업, 양극화 등이 가져온 가정 경제의 주름살로 남편들의 가슴은 무겁고, 아내의 부재는 여기에 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윤 교수팀은 근무시간이 일하는 당사자의 육체, 정신적 피로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겨울이 매서웠던 만큼 볕이 기꺼운 봄이 왔건만, 이 땅의 가장과 아내의 마음은 무겁다. 우울증에는 햇볕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한다. 햇빛은 만인에 공평할 뿐 아니라 돈 없이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사계절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태국에는 실제로 우울증 환자가 별로 없다고 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민이 낙천적이고 명랑한 것은 일조량이 많은 이 나라의 기후, 지리와 무관하지 않다. 햇볕을 받으면 나쁜 균이 죽듯 봄에는 범죄도 감소한다고 한다.

우울한 남편과 일하느라 지친 아내들이여, 무작정 봄볕으로 들어가 보자. 찌든 삶으로 인한 우울과 마음의 병이 봄빛에 녹고 삶을 이어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먹고살기 바빠 봄이 오는지 가는지조차 느낄 새 없는 부부들이 염려된다. 고용 한파 속에 자영업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 500만 명 이상이고, 이들 밑에서 일하는 무급 가족 종사자가 6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폐업 직전의 한계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하니 봄이 왔으되 봄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과 아내가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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