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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전염병 꼼짝마" 수만t 화물선 샅샅이 훑어…승선 검역 현장

송고시간2016-04-24 12:00

(여수=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전남 여수 앞바다에 지정된 국립 여수검역소의 '제1 검역장소'에 2만2천t급 화학제품 운반선 '아전트 선라이즈'호가 정박했다. 이 배의 꼭대기에서는 검역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황색기가 펄럭였다.

20일 여수검역소의 검역관들이 여수 신항 관공선 계류장에서 관세청 소속 세관 감시정을 타고 아전트 선라이즈호로 접근했다. 전염병 유입을 막기 위한 이 배의 '승선 검역'에 취재진이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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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밑 조심하세요!" 아찔한 '갱웨이'

아전트 선라이즈호는 전체 길이가 약 180m, 폭이 28m에 이른다. 화물 적재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만, 수면에서 갑판의 높이도 3∼4층 건물 높이에 달한다.

바다 한복판에서 이렇게 높은 배에 오를 때는 배 측면에 비스듬히 설치된 이동식 철계단인 '갱웨이'를 이용한다. 가끔 파도 등으로 기상 상황이 악화하면 갱웨이를 오르던 검역관이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지는 사고도 발생한다고 한다.

한 검역관은 "정말 큰 대형 선박의 갱웨이를 오를 때는 하도 힘들어서 중간에 쉬었다 가야 할 정도"라며 "그나마 갱웨이가 설치된 배는 '줄사다리'를 내려주는 배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웃었다.

검역 대상 선박에 오를 때는 물에 빠질 때를 대비한 구명조끼는 물론 N95 규격 마스크와 장갑 등을 착용해야 한다. 이 배에 어떤 병원체가 있을지 아직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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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역관은 선원이 감염병 환자인지부터 확인한다. 아전트 선라이즈호의 선원은 한국인이 11명, 미얀마인이 12명이었다. 검역관들은 이들의 체온이 37.5도를 넘는지 파악하고 구토, 설사 등 감염병 증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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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배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검물을 채취했다. 주방의 도마·음식물, 쓰레기통, 화장실의 변기 등에서 검체를 모았다. 이런 곳에서는 설사를 유발하는 '장염비브리오균' 등이 주로 발견된다.

모든 선원의 건강을 확인하고 배 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데에는 약 1시간이 걸린다. 선박이 클수록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갑갑한 마스크를 낀 채 후텁지근한 선실 안을 철저하게 돌아본 검역관들의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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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검역소는 1년에 약 9천 척 이상을 검역한다. 이 중 6천 척 정도는 서류상 '전자 검역'으로 대신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하는 '검역감염병 오염지역' 국가를 방문하고 돌아온 연간 약 3천500척은 검역관이 직접 승선한다.

3월 현재 검역감염병 오염지역은 아시아 23개국, 아프리카 33개국, 중남미 28개국, 오세아니아 3개국 등 총 81개국이다. 한국을 떠난 지 약 2달 만에 중국, 일본, 캐나다 등을 방문하고 돌아온 아전트 선라이즈호는 중국이 오염국가로 지정돼 있어 승선 검역 대상이었다.

승선 검역을 마친 뒤, 아전트 선라이즈호의 황색기는 내려져 있었다. 검역을 완료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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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은 없고….

전국의 검역소는 고질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선박과 항공을 포함한 전체 검역대상은 2010년 19만4천936건에서 2015년 41만3천724건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지만 검역소 인원은 같은 기간에 335명에서 325명으로 오히려 10명 줄었다.

식품 등의 검역을 담당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하던 기간에 인원이 다소 보충됐다는 점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여수검역소 검역관들은 검역대상 선박의 정박 일정에 따라 새벽 2∼3시까지 근무를 하고도 다음 날 별도 휴식 없이 같은 시간에 출근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검역소의 업무는 선박 검역만이 아니다.

검역관들이 채취한 가검물에서 세균·바이러스를 검출하는 것도 직접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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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검역소는 실험실 내 병원체가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도록 유지되는 BL3(생물안전 3등급) 시설이 갖춰져 있다. 전국 13개 검역소 중에서 유일하다. 이 실험실에 들어가려면 필터가 갖춰진 호흡 보조기구와 전신보호구로 온몸을 감싸야 한다.

흰줄숲모기(지카바이러스·뎅기열 등), 작은빨간집모기(일본뇌염)와 같은 감염병 매개체의 개체 수 감시, 검역 구역의 방역·소독 등도 검역소의 임무다.

박기준 여수검역소장은 "최근 해외 유입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검역 대상도 크게 늘고 있지만 인원 부족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사람 검역이 동식물 검역보다 못한 꼴"이라고 푸념했다.

검역소가 운영하는 검역선은 한 척도 없고, 해상 검역 때 세관의 감시정을 빌려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강옥경 여수검역소 광양지소장은 "1980년대 이후 '검역선'을 보유한 검역소가 전국에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며 "급한 검역 용무가 있을 때도 일일이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해 서로 불편하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junm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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