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2011년 4월 벌어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검찰의 수사 본격화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람이 흡입했을 때 치명적인 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가습기 살균제로 140여 명이 숨졌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억울한 죽음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조·판매사에 대해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업체들은 뒤늦게 사과를 하고 나섰습니다. 이 사건이 2011년부터 최근까지 걸어온 길을 추적해 봅니다.
# 2011년 4~5월, 서울시 내 A병원에 출산 전후의 20~30대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 등 8명이 원인 불명의 폐 질환으로 입원합니다.

30대 산모 4명은 폐 조직이 급속도로 딱딱하게 굳어지는 증세를 보이다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한 채 1~2개월 만에 사망합니다. 3명도 같은 증세로 중태에 빠졌다가 폐 이식을 통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집니다. 보건당국은 원인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 2011년 8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내놓습니다.
질본은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제조업체에는 제품 출시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 2011년 9월,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원인 미상 폐 질환에 걸려 사망하거나 병에 걸린 영유아 6명과 산모 2명의 피해사례를 공개합니다.
이들은 영유아 5명과 산모 1명이 사망했으며 영유아 1명과 산모 1명은 폐 질환 환자가 됐다고 주장합니다.

# 2011년 11월, 질본은 "실험 쥐를 이용해 가습기 살균제 흡입 독성 실험을 진행한 결과 잠정적으로 이상 소견이 나타났다"고 밝힙니다. 약 2개월간 쥐 80마리로 실험한 결과입니다.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은 제품 생산과 판매를 중단했고 기존 제품은 강제 회수, 폐기됩니다.

# 2011년 11월, 녹색소비자연대 등 시민단체가 법무법인과 공동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집단분쟁조정 절차에 들어갑니다.
# 이 사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점점 더 많이 파악됩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피해사례를 모은 결과 2011년 11월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28명에 달했습니다.

# 질본이 지목한 폐 손상 원인 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는 다른 살균제에 비해 피부·경구(섭취 시 영향)에 대한 독성이 훨씬 적은 데다 살균력이 뛰어나고 물에 잘 녹는 물질이어서 두루 쓰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 물질을 '흡입'했을 때 어떤 잠재적 위험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 치명적인 영향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가습기 살균제는 '세정제'로 분류됐고, 안전인증 마크까지 받았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 12월부터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합니다.

# 2012년 1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 손상으로 숨진 피해자의 유가족이 국가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를 상대로 배상금과 위자료 지급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냅니다.
# 2012년 8월,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 사망한 이들의 유족 8명이 살균제 제조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합니다. 고발 대상은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코스트코코리아, 애경산업, SK케미칼 등 17개 업체.
검찰은 사건을 서울 강남경찰서에 내려보내 수사를 지휘하기 시작합니다.

# 정부가 2011년 11월11일부터 2013년 3월14일까지 접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 인원은 357명. 이 중 사망자는 11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 2013년 6월,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지원하는 피해구제기금을 설치하고 환경부에 피해대책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여야 간 논란 끝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됩니다.

# 2013년 8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의료비를 지원하기로 합니다.
가장 부담이 큰 의료비를 정부에서 먼저 지원하고, 피해 발생의 원인이 추후 밝혀지면 원인을 제공한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기로 한 겁니다.

# 2013년 11월, 국회 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쉐커라파카 옥시 대표는 50억 원 규모의 지원기금을 자발적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힙니다.
# 2013년 12월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유감이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심경을 전합니다. 사태가 발생한 2011년 4월 이후 주무부처인 환경부 장관이 피해자들을 직접 마주한 것은 처음입니다.

# 2014년 3월, 질본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의심 사례 361건 가운데 127건은 인과 관계가 거의 확실한 것으로, 41건은 가능성이 큰 사례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합니다.

# 2014년 4월, 환경부는 질본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거의 확실', '가능성 큼'으로 판정한 피해자 168명에게 의료비, 장례비(사망자) 등 정부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합니다.
# 2014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국내에 유통한 15개 업체를 살인 혐의로 고소합니다. 고소인단은 모두 64가구, 128명.

# 2015년 1월,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합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에 일부 유해한 화학물질이 사용된 것은 인정되지만, 국가가 이를 미리 알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 2015년 4월, 폐 질환을 앓는 53명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추가 인정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은 모두 221명으로 늘어납니다.
# 2015년 9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이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제품 제조사인 레킷벤키저사 영국 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냅니다.

# 2015년 9월, 서울 강남경찰서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15곳의 대표이사를 업무상 과실치상·치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8개 회사는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5곳은 유해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건당국의 소견에 따라 각하, 2곳은 피해자가 없어 무혐의 처분을 했습니다.

# 2015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 7명이 경찰에서 혐의없음 처분 등을 받은 제조·유통업체 대표자를 살인죄로 처벌해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합니다.
# 2016년 4월, 검찰은 사망 원인이 된 폐 손상을 유발하는 제품군을 4개로 압축해 해당 제품의 제조·유통업체를 본격 조사하기로 합니다.
이전에 진행된 연구·역학조사·동물실험 결과를 분석하고, 160∼170여명의 피해사례도 정밀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수사팀은 연구·조사를 통해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 10개 제품 가운데 ▲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옥시) ▲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롯데마트PB) ▲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홈플러스PB) ▲ 세퓨 가습기살균제(버터플라이이펙트) 등 4개 제품이 폐 손상을 유발했다는 잠정 결론에 이릅니다.
검찰은 4월19일, 옥시레킷벤키저 인사 담당 상무를 불러 조사합니다. 제조사 임원에 대한 첫 소환 조사입니다.

# 2016년 4월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인 영국계 옥시레킷벤키저가 2011년 '폐 손상 사망' 논란이 일자 민·형사상 책임을 피하고자 기존 법인을 청산하고 성격이 다른 새 법인을 설립하는 등 편법을 쓴 정황이 포착됩니다.

#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뒤늦은 사과를 합니다.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 큰 고통과 슬픔을 겪은 피해자 여러분과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관련 보상 재원으로 100억원 정도를 마련하겠다."(4월18일)

홈플러스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며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검찰 수사 종결 시 인과관계가 확인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협의를 진행할 예정." (4월18일)
PHMG 공급사인 SK케미칼은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이므로 답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함구했고,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는 언론과 연락조차 닿지 않았습니다.

# 2016년 4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영국계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제품의 인체 유해 가능성을 적시한 법적 공식 자료를 검찰 수사 직전 삭제한 정황이 포착됩니다.
hye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4/20 18:3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