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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이장에서 군수·장관·도지사 거쳐 여의도까지

송고시간2016-04-13 23:50

김포서 터잡은 지 2년만에 당선…"경력 살려 김포 발전시키겠다"

(김포=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마을 이장에서 군수, 행정자치부장관을 거쳐 도지사까지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두관(57) 후보가 이번에는 여의도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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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김포갑에서 승리한 김 당선인은 2004년 17대, 2008년 18대 총선 당시고향인 경남 남해에서, 2014년 7월 보궐선거 때 김포에서 낙선해 이번이 네번째 총선 도전이었다.

김 당선인은 13일 "2년전 생면부지인 김포에 왔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저를대표 일꾼으로 뽑아 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유세 도중 "보궐선거에서 떨어진 뒤 지금까지 630여일 동안 김포를 샅샅이 누벼 이동거리만 5만㎞에 달한다"고 말할 정도로 발로 뛰어다녔다.

김 당선인은 "공약은 거창하진 않지만 김포에 꼭 필요한 공약들로 구성했다고 자부한다"며 "장관·도지사의 경험을 살려 국회의원으로서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고 드라마틱하면서도 남다른 궤적을 그려왔다. 보통 정치인의 삶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30년 전인 19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간사로 활동하다가 개헌추진본부 충북지부 결성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듬해인 1987년 동아대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민회를 결성해 사무국장을 지냈다.

1988년에는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마을의 '이장'에 뽑혔다. 통상 이장은 40∼60대 장년들이 하지만 그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그것도 대학 출신이지만 마을을빗자루로 쓸며 주민을 섬기는 마음가짐으로 이장이 됐다.

1989년에는 주민 주주공모로 남해신문을 창간해 직접 신문을 배달하기 까지 했다.

그는 이처럼 농민회 사무국장, 이장, 신문사 대표 등 여러 분야에서 쌓은 경험과 인지도에 힘입어 1995년 첫 남해군수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기자실 폐쇄·민원조정기구 운영·외국 축구 국가팀 훈련 유치 등으로 인구 5만의 남해 작은 군을 연간 500만명이 찾는 관광지로 만들었다.

파격적 행정으로 MBC 다큐먼터리 성공시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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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남도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떨어진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에 들어 행정자치부장관에 전격 발탁됐다.

행정의 최말단, 그것도 시골의 작은 마을 이장이 일반 행정의 총수인 행자부장관 자리까지 오른 셈이다.

하지만 2004년 17대 총선, 2006년 제4회 경남지사 선거, 2008년 18대 총선에 나섰으나 연거푸 낙선했다.

그의 끈질긴 도전은 2010년 5회 경남지사 선거를 통해 다시 빛을 봤다.

김 당선인은 "국회의원과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처 말단 직원까지 찾아가 읍소해 3조800억원의 국비를 확보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년 뒤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만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시 2년 뒤 경기 김포로 옮겨 보궐선거에 나서며 정치적 재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가 이번에 목표를 이뤘다.

김 당선인은 "오늘 김포에 두 명의 국회의원이 처음 탄생했는데 갑과 을 지역 구분없이 손잡고 일해 김포의 발전을 두배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첫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그가 다시 어떤 도전에 나설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chang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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