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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의 연극 오디션'…"이혼가정 아픔에 도움 되길"

송고시간2016-04-02 19:28

연극 '여보 고마워' 출연…5월20일∼7월2일 서울 공연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당신은 매번 그런 식이야. 뭘 잘못했는지나 알아!"

연극 '여보 고마워' 오디션에 첫 번째 참가자로 나선 이대로(35) 인천가정법원 판사는 느닷없는 호통에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실제 부부싸움을 가정하고 아내와 싸우는 남편을 연기해보라는 즉석 연기 지시가 떨어지자 아내 역을 맡은 고혜정(48·여) 작가가 매섭게 돌변해 잔소리를 늘어놨기 때문이다.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던 오디션장은 당황하는 이 판사의 모습에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2일 오후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지하 2층 청연재에서는 연극에 판사 역할로 출연할 법관을 선발하는 공개 오디션이 열렸다.

30∼40대 판사 8명이 왼쪽 가슴에 '오디션 참가자 ○○○ 판사'라고 쓰인 명찰을 달고 차례차례 무대에 올랐다.

먼저 극 중에서 실제 연기할 판사의 대사 10줄을 연기하라는 '공통 과제'가 주어졌다.

처음 해보는 연기가 어색한 듯 두 손으로 대본을 꼭 쥔 채 또박또박 대사를 읽어나가는 판사가 있는가 하면 미리 동선까지 준비해와 전체 무대를 활용해 연기하는 판사도 있었다.

'판사들의 연극 오디션'…"이혼가정 아픔에 도움 되길" - 2

이미 연극·영화에 다수 출연해 나름 '화려한 연기 경력'을 지닌 김용희(37) 평택지법 판사의 연기는 단연 눈길을 끌었다.

10줄가량의 짧은 대사였지만 오디션장을 울리는 깊은 목소리와 다양한 몸짓으로 표현해냈다.

심사위원의 요청으로 그는 강원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던 2006년 극단 굴레의 연극 '미라클' 속 배역을 다시 연기하기도 했다.

대사를 마친 후에도 김 판사는 한동안 자신이 연기한 배역의 감정에서 쉬이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눈시울을 붉힌 채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기도 했다.

그의 연기를 본 심사위원들은 "채플린을 보는 것 같다", "더는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며 입을 모아 호평했다.

이 밖에도 법복을 벗고 배우로 오디션장에 선 판사들은 저마다의 개성 있는 모습을 뽐냈다.

대학 시절에 했다는 중국어 연극 연기를 보여주고, 가수 윤도현의 노래를 고음으로 열창하는가 하면 남편에게 보내는 애교를 선보이기도 했다.

심사는 고혜정 작가, 노준성 감독, 신주선 대표, 정승원 부장판사, 신순영 판사가 맡았다. 심사 기준은 화술·표정·동작 등3가지였다.

연극 '여보 고마워'는 평범한 부부가 작은 갈등으로 이혼 위기에 봉착하지만 뜻하지 않은 남편의 병마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2008∼2010년 공연 당시 배우 박준규, 이현경씨 등이 출연해 흥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대법원 산하 부모교육연구회가 협의이혼하는 부부를 대상으로 효과적인 '부모교육'(자녀양육 안내) 방법을 찾다가 다시 무대에 올리게 됐다.

각색 과정에서 제3자의 조언으로 당사자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해결책을 직접 찾도록 이끌자는 취지로 판사 출연 장면이 추가됐다.

노준성(39) 감독은 "작품 공부를 위해 가정법원을 찾았다가 이혼 준비 중인 부부가 교육 동영상을 보고 우는 모습을 봤다"며 "진짜 판사가 뭐라고 얘기하는지를 작품에서 보여주면 그들이 후회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판사를 출연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고 작가는 "판사들이 의외로 끼가 많아 너무 놀랐다"면서 "제 작품이 이혼율을 낮추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며, 많은 부부가 가정과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동료 법관의 연기를 평가한 신순영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가정의 아픔과 아이들을 잘 이해하는 판사가 출연할 때 더욱 공감 있는 연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오디션 열기를 보여주듯 이날 곧바로 출연자가 선정되지는 않았다. 법원 측은 심사위원들의 숙의를 거쳐 최종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판사들의 연극 오디션'…"이혼가정 아픔에 도움 되길" - 3

'여보 고마워'는 5월20일부터 7월2일까지 서울 문화일보홀에서 상연된다. 공연 시간은 일요일 오후 3시30분, 그 밖의 요일은 오후 7시다. 법원은 협의이혼을 앞둔 부부에게 관람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부모교육연구회는 2010년 8월 전국 가사담당 판사와 가사조사관들이 모여 창립했다. 현재 회원은 판사 195명과 조사관 115명이다.

bo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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