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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미국 세균전 없었다"…中 군고위층 생전증언 나와-1

참전 중국인민지원군 위생부장 회고록서 "가짜 경보"…선양서 흑사병균 가져와
당시 중국군 총참모장 사망직전 "세균전 없었다. 더이상 주장 말라" 당부
1998년 공개 소련 비밀문건들 "소련이 기만당했다…증거조작 책임자 처벌"
니덤 보고서 美공군 포로 자백에 대해 위생부장 "설득 성과에 찬탄"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한국전쟁 때 미국이 북한과 중국 동북지방에서 세균전을 벌였다는 북한, 중국, 옛 소련측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당시 중국군측 고위관계자들의 생전 증언이 밝혀졌다.

"6.25때 미국 세균전 없었다"…中 군고위층 생전증언 나와-1 - 2

지난 1998년 공개된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의 1953년 비밀문건들에서 소련 공산당과 정부가 이미 `미군 세균전' 주장은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중국군측 고위책임자들의 이런 증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소련은 1953년 이후 `6.25 미군 세균전' 주장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으나, 북한은 여전히 반미선전에 미군 세균전 주장을 적극 활용하고 있고, 중국군 역시 공식 한국전쟁사 등에선 이 주장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정규군인 중국인민해방군의 이름만 바꾼 부대)의 의무책임자였던 워질리가 1997년 쓴 짤막한 회고록에서 미군이 세균전을 벌였다는 주장은 "가짜 경보(false alarm)"였다고 자책했다고 미국의 저명한 생화학전 전문가 밀턴 라이텐버그 메릴랜드대 국제안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밝혔다.

이 회고록은 워질리가 2008년 사망한 후 2013년에야 당시 진보적 성향이던 학술지 염황춘추(炎黃春秋)에 실렸고, 이어 라이텐버그 연구원의 주선으로 지난해 4월 영어로 번역됐다.

회고록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한국전 당시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을 지낸 황커청(黃克誠)이 워질리와 대화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에서 세균전을 벌이지 않았다. 이제 두 나라(중국과 미국) 관계가 나쁘지 않으니, 그 문제에 관해 계속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세균전 주장을 명확하게 철회한 것이다.

1986년 12월 사망한 황은 죽음을 앞두고 워질리에게 이 같은 입장을 사전을 편찬하고 있던 군사과학원 관계자들에게 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워질리가 황커청에게 당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사과하자 황은 "그럴 것 없다. 정치투쟁이었으니. 더구나 당신은 처음부터 세균전에 관해 (증거가 없다는) 당신의 견해를 밝혔었잖나.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고 위로했다.

워질리는 "이 사건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할 날이 올 것이다. 이제 나는 83세의 노인으로 사실을 알고 있고 현역도 아닌 만큼 꺼릴 게 없다. 1952년의 세균전은 가짜 경보였다"고 회고록을 맺었다.

워질리는 그러나 황커청의 말을 전해듣고 자신을 찾아온 중국 군사(軍史) 관계자들이 세균전 유무를 재차 확인하는 질문에 "`우리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대답했을 뿐"이라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회고록 집필 11년 전인 당시엔 '세균전은 없었다"고 명확하게 말하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모호하게 답변한 것이다. "이는 내가 오랫동안 남몰래 후회해온 일"이라고 그는 자책했다.

◇ "가짜 경보"

라이텐버그 연구원은 이달 초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냉전국제사프로젝트(CWIHP)'의 일환으로 작성한 연구보고서에서 이러한 내용의 워질리 회고록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이와 함께 소련의 비밀문건 등을 종합해 "결론은 이론의 여지 없이 명확하다"며 한국전 때 소련, 중국,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펼친 세균전 주장은 "허위, 즉 거대한 정치극의 하나였다"고 단언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위생부장(Director of Health Division)이었던 워질리의 세균전 관련 회고는 "지금까지 중국측에서 나온 모든 주장들을 뒤집어엎는 것"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라이텐버그 연구원은 강조했다.

워질리는 "조선전쟁 휴전 이래 이미 44년(1997년 기준)이 흘렀다. 1952년 일어난 전 세계적인 소동, 즉 논란의 여지 없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세균전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가짜 경보의 하나다"로 회고록을 시작했다.

1952년 1월29일 북한에 있는 중국군 사단중 한 곳으로부터 참호 사이에 쌓인 눈밭에서 약 80마리의 곤충, 진드기, 벼룩이 발견됐다는 전신보고가 접수됐다.

같은 날 조선인민지원군 총사령인 펑더화이(彭德懷)와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에 도 보고됐고, "유사한 상황이 있으면 적기 보고하고 주의하라는 뜻에서" 각급 부대에도 전달됐다.

그러나 워질리의 위생부대 실험실에선 이들 곤충과 진드기 등에서 아무런 병원균도 찾아내지 못했고, 갑자기 죽거나 의심스러운 병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워질리는 혹한의 겨울은 세균전에 적기가 아니며 중국군과 북한군 참호로부터 불과 10m 정도밖에 안되는 곳에 미군 참호가 있는 점에도 생각이 미쳤다. 북한 지역엔 이미 기생충 매개의 전염병이 퍼지고 있고 각 가정에 벼룩이 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워질리는 미국이 세균전을 벌이고 있음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동료 한 사람 역시 "가짜 경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 때쯤 "적군이 생물전을 벌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대 위생사업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는 뜻밖의 당중앙위 전문도 도착했다.

이에 워질리는 세균전 증거가 없다는 자신의 결론을 펑더화이에게 전문보고한 후 펑더화이의 지시에 따라 사령부로 가 펑더화이에게 다시 직접 보고했다. 여기엔 역시 세균전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북한 인민군 질병예방국장도 동행했다.

그러나 펑더화이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우리의 위생부장이 미제국주의의 공작원이어서 적군을 대변하는구만"이라는 것이었다.

워질리는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는 줄 알았으나 펑더화이는 잠시 참모진과 논의한 후 돌아와 "일 제대로 하라"며 전반적인 질병예방실을 창설해 부책임자 자리를 맡겼다.

여기까지는 워질리가 말한 대로 "가짜 경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일선 사단에서 보내온 곤충, 진드기 보고를 받고 세균전을 의심해 조사해봤으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 "날조"

그러나 워질리가 회고록 나머지 부분에서 "미국이 생물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수행한 임무들"을 설명한 것을 보면, 그 이후의 상황 전개는 "적극적인 기만과 역정보"에 해당한다고 라이텐버그 연구원은 지적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현장 조사를 해보자고 거듭 제안했으나 소련, 중국, 북한은 응하지 않고, 중국 정부의 자체 조사단, '소련 주도 세계평화평의회(WPC) 소속의 국제민주법률가협회(IADL)'의 조사단, 그리고 역시 WPC에 의해 조직된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사실 조사를 위한 국제과학위원회(ISC)' 조사단 등 3개 조사단을 내세웠다.

워질리는 회고록에서 "세 조사단은 미 제국주의자들이 생물전쟁을 수행했다고 믿었으나, 우리는 그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 소련 학술원 회원인 주코프가 스탈린으로부터 그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주코프는 소련 미생물학자이면서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장성인 니콜라이 주코프-베레즈니코프 박사를 말한다. 워질리의 현장조사에서 발견되지 않은 "증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주코프가 맡았다는 뜻이라고 라이텐버그 연구원은 설명했다.

주코프는 2차 대전 후 일본 생물무기 과학자들에 대한 소련의 재판에서 의학전문가 책임자로 참여함으로써 일본이 중국에서 세균전에 활용했던 공중투하 장비와 용구 등에 정통하게 됐다.

세 조사단의 보고서와 달리 워질리의 위생부대는 1952년을 통틀어 아무런 생물무기 병균이나 그로 인한 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살모넬라 형태의 유기체 외엔 콜레라도 흑사병 균도 없었다.

한 중국군 장교는 ISC 조사단에 벼룩이 발견된 장소에 관해 거짓 증언하기를 거부하면서 "마오 주석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버티는 바람에 "적군과 투쟁해야 하는 현재의 필요성에 따르자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워질리는 회고했다.

흑사병균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은 쉬웠다. 부관들을 중국 선양에 보내 흑사병균 배양관 2개를 북한 지역으로 가져오도록 하는 데 5일이면 됐다.

라이텐버그 연구원은 한국전 휴전협상 중국측 대표단의 일원이 1990년대에 한 역사학자에게 세균전 주장은 "전부 헛소리(bullshit)"라고 말한 사실을 이 역사학자로부터 전해들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3차례 베이징에 가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겸 외교부장에게 직접 보고하기도 했던 워질리는 저우언라이가 1953년 5월 소련측 전문을 접하고는 즉각 황커청 총참모장과 홍쉐지(洪學智)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을 불러들여 "당신들이 재주(tricks)부린 것인가?"라고 추궁했다고 전했다.

홍쉐지는 저우언라이의 추궁에 시인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보고할 게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5월2일자 소련측 전문은 "소련 정부와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가 기만당했다. 미국이 한국에서 세균무기를 사용했다는 정보가 언론을 통해 확산된 것은 거짓 정보에 근거한 것이었다. 대미 비난 내용은 허위였다…세균무기 사용에 관한 이른바 '증거' 조작에 가담한 소련측 인물들은 엄격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는 내용으로, 마오쩌둥 앞으로 보내진 것이다.

하지만 저우언라이의 반응은 이중적이라는 게 라이텐버그 연구원의 주장이다. 저우언라이는 공산 진영의 세균전 주장이 본격화되던 1952년 2월부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저우언라이는 즉각 (세균전 주장을) 취소토록 지시했다. 이후 중국은 이 문제를 다시는 제기하지 않았다"고 워질리는 회고록에서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라이텐버그 연구원은 중국군의 1988년판 공식 한국전쟁사 등에선 여전히 세균전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며 자신이 아는 한 중국이 지금까지 이 주장을 공개 취소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ydy@yna.co.kr
(계속)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3/30 17:3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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