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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태한 교수 "美 첫 한인촌은 도산이 세운 '파차파 캠프'"

11월 '파차파 캠프' 논문 발표…도산 선생 동상 8월 새 단장
고 김영옥 대령 '자유메달' 수상 확률 높아…미주한인구술사 출판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 장태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 리버사이드)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은 3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최초의 한인촌은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이 1904년 리버사이드에 세운 '파차파 캠프'"라고 말했다.

장 소장은 이날 대학 사무실에서 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11월 도산학회 세미나에서 발표할 예정인 '파차파 캠프: 미국 첫 한인촌' 논문을 준비하느라 바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그는 이번 논문을 준비하면서 1902년 12월 7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게재된 도산 선생의 인터뷰 기사를 발굴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인터뷰> 장태한 교수 "美 첫 한인촌은 도산이 세운 '파차파 캠프'" - 2

◇美 최초 한인촌 '파차파 캠프'…사적지 지정 추진

장 소장은 "1902년 부인 이혜련 여사와 함께 미국에 건너온 도산 선생은 190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LA) 동부 리버사이드로 이주한다"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리버사이드에서는 오렌지 농업이 성해 한인들이 인부로 많이 고용됐다. 도산은 이곳에서 한인공동체인 '파차파 캠프'를 조성했다. 1911년 파차파 캠프를 방문한 강명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은 이곳을 '도산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장 소장은 "도산 선생은 이곳에서 신민회와 흥사단 조직을 구상했다"면서 "미국 내 독립운동의 본고지가 바로 리버사이드인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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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리버사이드 시 다운타운에 있던 파차파 캠프는 10여 개 가족 50여 명이 거주한 판자촌이었다. 1880년대 중국계가 철도공사를 하면서 임시 거주지로 터를 잡은 곳이었다. 이후 중국인들이 떠나면서 한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그는 이어 "파차파 캠프 부지를 '사적지'(Historical Site)로 지정하기 위해 지난해 리버사이드 시청에 신청했다"면서 "현재 땅 소유자는 가스회사 등 2곳으로 이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장 소장은 또 "오는 8월 리버사이드 시청 앞 광장에 있는 도산 선생 기념 동상을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총회장 홍명기) 주도로 진행되는 동상 재단장 사업은 도산 선생이 농장에서 오렌지를 수확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도산 선생이 미주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행동하는 지도자로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장 소장은 "도산 선생 동상 인근에 세워진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서 킹 목사 동상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면서 "미국인들에게 감흥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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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헤멧 사건'…미주 한인들 법적 지위 보장

특히 장 소장은 1913년 6월 일어난 '헤맷 사건'을 거론하면서 "미국 정부가 미주 한인들의 법적 지위를 처음으로 인정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헤멧 사건은 1913년 6월 25일 과일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리버사이드에서 출발해 헤멧역에 도착한 한인 노동자들이 백인 노동자들에게 강제로 쫓겨난 사건을 말한다.

당시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백인 노동자들이 한인을 일본인으로 오해해 그들을 쫓아낸 사건이다.

한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백인 노동자들보다 저렴해 이에 화가 난 백인 노동자들이 무력으로 한인들을 쫓아낸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남가주 일본인회에서 샌프란시스코 일본 영사관에 이를 알렸고 워싱턴DC에 있던 일본대사관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미주 한인들이 일본 신민들로 그들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 정부에 정식 항의했다.

이에 당시 이대위 대한인국민회 회장은 윌리엄 브라이언 국무장관에게 "미주 한인들은 일본 신민이 아니며 일본 정부의 보호를 거부한다"는 전보를 보냈다.

브라이언 국무장관은 "미주 한인들은 일본 식민 국민이 아니므로 미주 한인들에 대한 모든 문제는 대한인국민회와 해결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를 통해 미주 한인들은 일본 신민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받게 됐고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고 장 소장은 전했다.

장 소장은 "한인들은 3.1운동 직후 독립자금 모금운동을 벌여 10만 달러 이상을 모아 상당액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냈다"면서 "1920년 3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윌로우스에 비행학교를 설립해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윌로우스 비행학교 터를 '미국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하려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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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ㆍ한국전 참전 영웅 고 김영옥 대령

그는 이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참전 영웅인 고 김영옥(1919∼2005) 대령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면서 "고 김 대령이 이번에 미국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후보에 올랐다"고 말했다

앞서 연방 하원 내 '친한파' 의원이자 하원 외교위원장인 에드 로이스 의원은 지난달 23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대통령 자유메달' 후보로 고 김영옥 대령을 추서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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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장은 "대통령 자유메달 수상자에는 아시아계가 1명씩 포함돼왔다"면서 "지난 3년간 일본계가 받았는데 올해는 김 대령에 적수가 될만한, 경쟁자가 될만한 아시아계 후보가 없어 수상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대령이 미주 한인 사회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05년 재미언론인 한우성 씨가 저술한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이라는 책을 출판한 이후"라며 "김 대령은 미주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주"라고 강조했다.

장 소장은 "한 씨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1992년 'LA 폭동'"이라며 "당시 한인사회가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흑백 갈등에서 희생양이 된 것이지만 한인 사회는 정치적 힘이 미약해 속수무책이었다"고 했다.

◇미주 한인 구술사 다음달 출판…한인 인구 디지털 지도도 제작

한 씨는 'LA 폭동'이 일어난 직후 미주 한인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발견한 사람이 김 대령이었다.

장 소장은 "한 씨와 나를 연결해준 분도 김 대령"이라며 "한 씨와 함께 1999부터 2002년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법정 소송을 진행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필리핀 한국인 위안부 존재를 입증하는 미군 서류와 한국인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갔다는 네덜란드 정부 문서 등을 발굴하는 성과를 냈음에도 자금이 부족해 소송은 흐지부지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축적한 위안부 자료를 정리하면서 미주 한인사회와 한미관계를 연구하는 연구소 설립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그래서 김 대령의 이름을 따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 리버사이드대)에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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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장은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한국 정부에 한국학 연구소가 아닌 미주 한인사회와 한미관계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지원을 받는데 5년 이상 걸렸다"면서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는 2013년부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짧은 기간이지만, 연구소에서 김 대령에 관한 도서 3권을 출판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기금을 받아 미주 한인 구술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소장이 주도한 미주 한인 구술사는 다음 달 말 '외로운 여정'(Lonesome Journey)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본과 영어본이 나올 예정이다.

그는 "연방 인구센서스에 근거해 미주 한인 인구통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미주 한인 인구 디지털 지도'를 제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jongwo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3/31 06: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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