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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야기> 김형석 교수의 장수 비결과 행복론

“행복은 선택과 노력의 대가입니다”
<인문학 이야기> 김형석 교수의 장수 비결과 행복론 - 2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한국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형석(97)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10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정정한목소리로 강연한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집필에 전념하며,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로 사람을 대하면서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김 교수는 살아 있는 근현대사 역사책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기를 거쳤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성장했으며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또 김수환 추기경은 후배로,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였던 안병욱·김태길 교수를 친구로두었으며, 박두진·박목월·구상 시인과 사귀었다.

친할아버지처럼 푸근하고 밝은 인상을 주는 원로 교수가 100년 가까이 살아오며 찾아낸 행복론과 장수 비결에 귀를 기울여봤다.

--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 오전 6시 30분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신문을 보고 산책을 해요. 여름에는 짧게, 겨울에는 좀 더 길게 하죠. 요즘엔 책을 하나 쓰기로 해서 하루에 원고지 40장씩 글을 써요. 점심은 보통 산책을 하고 친구들도 만나기 위해 밖에 나가서 하죠.

오후에는 30분 정도 낮잠을 자고 원고를 쓰고 1시간 정도 산책을 해요. 산책은 건강을 위한다기보다 원고 쓰는 것과 강연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이죠. 저는 이걸 ‘생산적인 산책’이라고 해요.

또 밤에는 책을 읽고, 뉴스를 봐요. 피곤할 때는 스포츠 중계도 보고요. 스포츠는 축구나 배구를 보는데, 남자들 배구는 너무 잘하니까 재미없고 여자 배구를 더 즐기죠. 월·수·금요일에는 수영하고, 오는 3월부터는 좀 바빠지는데,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강연을 할 겁니다.

--‘한국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 선배 중에는 외국 철학을 소개한 분도 계시고, 우리 철학계가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노력한 박종홍(1903~1976) 서울대 교수 같은 분도 계시죠. 김태길(1920~2009) 서울대 교수와 저는 한국 철학의 1.5세대쯤 되는 거죠. 후배들이 철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좀 닦아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 쓰고 있는 책에는 어떤 것을 담나요.

▲ 100세에 가까우니까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와요. 오십 이상 되는 사람들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좋겠는가, 내가 살아보니까 어떤 해답을 얻었다 그런 것에 대한 거죠. 50대 이후의 인생관이라고 할까요.

젊었을 때는 사람들의 생활이 비슷한데 장년기에 본격적으로 차이가 나타나죠. 성공하는 사람, 실패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60대가 되면 뚜렷해져요.

요즘 보면 오래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적고, 부담스러워하고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좀 많은 것 같아요. 늙어서도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 어떻게 살아야 나이가 들어서도 즐겁고 행복할까요.

▲ 젊었을 때는 용기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요, 장년기에는 인생에 뚜렷한 신념과 가치관이 있는 사람이 행복해요. 나이가 들어 인생이 내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혜를 쌓아 올라가는 사람이 있어요. 나이 들었다고 인생을 내려버리지 말고 끌어올리는 생활을 해야 해요.

또 나이 든 사람이 자꾸 일하려고 하면 건강도 놓치고 불행해져요.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 조선어학회 창립, 한글학회 이사장)도 건강하게 오래 일하실 분이었는데, 한글학회에 애정이 많다 보니 일에 지쳐서 생각보다 일찍 돌아가셨죠. 나이가 들면 일은 후배에게 맡기고 아이디어만 제공해주고 그래야 해요.

가장 큰 문제는 부부 중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가 된 후의 노후 관리예요. 저도 그렇고 우리나라 노인들이 많이 겪는 일인데, 직접 겪어보면 큰 문제죠. 그럴 때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하느냐가 노후의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죠.

-- 혼자되고 난 후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 결국에는 인간관계를 확대해 나가야 해요. 혼자 남으면 옛날하고 달라서 자식에게 의존할 수도 없고, 재산이 있다고 해도 고독하고 힘들어요. 꼭 친구를 만드세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혼자 남은 늙은이들이 여자 친구를 사귀고 함께 사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여자 친구가 생겨서 같이 살게 됐다’고 말하면 자식들도, 친구들도, 사회도 이해해줘요. 저도 한 10년 전에 그렇게 한 번 모범을 보였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80세 넘어서 혼자가 되면 혼자 있지 말고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함께 살도록 하세요.

그런데 재산이 많으면 여자 친구와 함께 살거나 재혼하는 것을 자식들이 많이 반대해요. 자식들한테 법적으로 줄 재산 나눠주고, ‘이건 손대지 말라’고 하고, 또 ‘내가 관리하다가 갈 때가 되면 너희한테 줄 수도 있고 사회에 환원할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합리적인 사고가 있으면 좋겠어요.

-- 혼자 지내시기 힘들지 않으세요.

▲ 아들이나 딸한테 가야겠다고 하면 자식들 부담될 것 같고, 애들에게 맞춰 살아야 하니까 자유롭지도 않을 것 같아 혼자 살게 됐어요. 혼자 살 수 있을 정도로 경제력도 되고요. 혼자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게 생산적이고 자유롭고 좋아요.

더 늙어서 몸이 혼자 거동하기 불편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긴 해요.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우선 양로원에 가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을 친구로 삼고 그렇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으면 좋긴 하겠는데 제가 부담스럽겠죠. 아직 어느 길이 옳은지 모르겠어요.

<인문학 이야기> 김형석 교수의 장수 비결과 행복론 - 3

--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 예전에는 일만 했는데 50세가 넘으니까 운동을 하나 해야겠더라고요. 운동하는 사람하고 하지 않은 사람은 70대가 되면 완전히 달라요. 저는 오십이 넘어 정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정구는 짝이 있어야 하고 시간도 맞춰야 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육십이 넘어서 혼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영을 하기 시작했죠. 외국에 가면 수영장 있는 호텔을 이용할 정도로 열심히 했죠. 수영은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그런데 오십이 넘으면 운동을 무리하게 하거나 운동을 위한 운동을 하면 안 돼요.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해야 해요. 더 하고 싶을 때 끊을 줄 아는 게 중요하죠. 운동은 건강을 뒷받침하고, 또 건강은 일을 뒷받침해요. 친구들 가운데 누가 제일 건강하냐는 누가 제일 일을 많이 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운동은 꼭 하나 하기를 권합니다.

-- 정신적 건강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 건강은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일하는 건강이 있다고 생각해요. 신체적으로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육십이 넘으면 정신적으로건강해야 해요. 항상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어야 하고 자신감도 가져야 하죠.

장수하는 사람들의 직업 통계를 보면 음악 지휘자가 가장 오래 살아요. 그것은 항상 아름다움을 찾아서 일하니까 정신적으로 건강해서그런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자연과 더불어 일하는 사람이에요. 사람과 달리 자연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 다음은 일하는 건강이에요. 일하는 건강이라고 하니까 이상한데 저는 그걸 ‘인간적인 건강’이라고 해요. 일을 많이 하니까 건강한 것이고, 건강하니까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거죠.

-- 만약 가능하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 60대로 돌아가고 싶어요. 인생에서 제일 행복하고 좋았던 시절을 보면 60~75세거든요. 그 이전에는 정신적으로 좀 빈약했고, 그 이후는 창의력이 없어지니까요.

결국은 정신적인 건강이 중요하죠. 사람은 60~75세에도 정신적으로 성장해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노력하지 않으면 내려와요. 내려오는 사람은 사회에서 버림을 받죠.

그런데 저나 제 친구들을 보면 75세 이후에도 그대로 계속 유지를 해요. 그렇게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면 사회에서 필요로 해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책도 쓰게 되죠.

-- 친구인 고 안병욱·김태길 교수도 오래 사셨습니다.

▲ 안병욱 교수나 김태길 교수는 87세쯤 되니까 끝났어요. 나이가 많이 드니까 강연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그래요. 강연 줄거리를 잊어버리고 자꾸 딴 데로 가요. 그런데 저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아요. 이건 제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라고 봐요. 건강하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노력해서 건강해졌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거죠.

-- 어렸을 때 몸이 굉장히 허약했다고 하던데요.

▲ 어렸을 때 몸이 약한 사람은 무리하지 않고 조심하게 돼요. 그래서 오래 살아요. 한경직 목사(1902~2000)도 폐병을 앓고 난 다음부터 자꾸 조심하니까 오래 살았죠. 건강하다고 무리하는 사람은 절대 오래 살지 못해요.

저는 제가 다른 사람처럼 건강하다는 것을 오십이 돼서 느꼈고, 칠십이 되고서 다른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렸을 때 허약한 사람이 일생 약하다는 법은 없어요.

-- 건강을 위해 드시는 것이 있습니까.

▲ 40~50년 동안 아침 식사로 빵과 우유, 사과, 채소, 계란을 먹었어요.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유 한 잔과 계란, 사과를 먹은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사과는 의사인 사위가 치매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먹게 됐어요.

다른 하나는 약을 잘 안 먹어요. 지금도 종합비타민과 눈에 좋다는 비타민A, 전립선에 도움이 되는 약밖에 안 먹어요. 약이 그때그때는 도움이 되는데 많이 먹으면 늙어서 역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될 수 있으면 먹지 않았는데 구십이 넘으니까 요즘 조금 먹기는 해요.

-- 윤동주 시인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는데요.

▲ 중학교 때 1년 반인가 2년을 같이 다녔어요. 그분이 나이는 세 살 위인데 만주 용정에서 숭실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학교 잡지 편집에 참여하고 선배 작가들과도 가까이 지냈죠. 시를 좋아했어요. 다감하고 착하면서도 심지가 곧았죠.

숭실학교가 기독교 학교여서 신사참배를 하지 않다가 중학교 3학년 끝날 때 하게 되니까 저는 학교를 자퇴했고, 윤동주 형은 용정으로 돌아갔죠.

윤형은 민족운동이나 독립운동에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어요. 아주 조용하게 자기가 가진 마음을 시로 나타냈죠. 깨끗한 신앙과 민족애에서 우러나온 시들이지요. 독립운동을 하려고 움직인 사람은 아니었고 정신적으로 참여한 사람이었죠. 그렇게 받아들여야 그분의 시가 이해돼요.

윤형은 도쿄 릿쿄대학에 있다가 학도병 모집을 피해 교토 동지사(도시샤) 대학으로 옮겼는데, 거기서 잡혀갔죠. 그때 조금만 더 지혜로웠으면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 심지가 곧고 강인한 그분 성격상 그렇지 못해 아깝게 가셨죠. 하지만 그분의 희생이 우리 민족에게 더 큰보람을 줬어요.

-- 일제강점기에 어려운 일을 겪지는 않으셨나요.

▲ 일본에 있을 때 저도 학도병 모집을 피해 교토에 가 있었어요. 당시 다니던 대학의 한국학생회 회장직을 맡으라는 선배들의 요구가있었지만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시간이 없어서 거절한 적이 있어요. 그때 만약 회장이 됐으면 일본 형사들의 명단에 올라 끌려갔겠죠.

저도 일본 형사들이 찾아와 책장을 뒤지고 책도 꺼내보는 등 소위 ‘예비검속’을 당했죠. 저는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그때 잡혀가서 고통받은 친구들이 많아요. 윤동주 시인도 그때 잡혀갔죠.

-- 만났던 많은 이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군지요.

▲ 제 인생에 첫 번째 스승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에요. 제가 살던 곳이 도산 선생 고향에서 북동쪽으로 20리 떨어져 있었는데, 17살 때 도산 선생이 저희 마을에 왔었어요.

삼촌 집에 머물면서 토요일 저녁하고 일요일에 교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때 강연을 들었죠. 얼마 후 서대문형무소에 가셨으니까 아마 그것이 그분의 마지막 강연이었을 거예요.

그때 인상이 너무 강해서 도산 선생에 대한 것을 알아보고 그랬죠. 도산 선생을 직접 만났던 사람은 거의 다 세상을 떠났어요. 이제 저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인촌 김성수 선생에게서는 직장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배웠죠. 그분은 아첨하는 사람, 동료를 비방하는 사람,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셨죠. 저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지금도 그런 세 부류의 사람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친박, 비박, 친노라고 하잖아요. 자신의 인격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선택할 게 있고 버릴 게 있는 것이지 편으로 나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이밖에 김태길과 안병욱 교수, 대학후배인 김수환 추기경, 김재진 목사 같은 분들을 사귀면서 많이 배웠어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런 분들은 어느 대학의 총장보다 월등하게 인품이 높은 분들이에요. 그분들과 친구였던 것이 행복합니다.

-- 직책을 맡지 않으신 거로 유명한데요.

▲ 중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느냐, 대학에 가서 학자가 되느냐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결국 ‘교수다운 교수로 살자’고 다짐했죠. 교수다운 교수의 첫째 조건은 학문보다 더 소중한 직책은 없다는 거예요.

교수들이 자꾸 처장, 학장, 총장이 되려고 그러잖아요. 교수가 할 건 아니죠. 교수는 학문이 본업이죠.

수차례 직책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한 차례 어쩔 수 없이 갑작스레 교양학부장이 된 것 이외에는 직책을 맡지 않았어요.

총장은 이미 학문이 끝난 사람이라고 봐요. 그럴 거면 총장보다 나가서 더 큰 일을 하라고 하고 싶어요.

-- 불행하다고 여기는 한국인, 특히 젊은이가 많습니다.

▲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래도 우리보다는 낫지 않나 싶어요.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살았고 공산치하를 겪었고 민주화 투쟁기를 보냈죠. 지금은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하는 때는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 어려운 시대를 살며 희망과 꿈을 만들어갔어요.

그런데 요새 젊은이들은 너무 나약해요. 너무 곱게 자라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장관이나 사장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다 올라갔기 때문에 더 올라갈 곳이 없어요.

그런데 농사꾼의 자식은 더 내려갈 수는 없고 올라가는 길만 있어요.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시대에 사는 젊은이가 행복하지 내려가는 시대에 사는 젊은이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직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시대죠. 우리 사회의 성장이 정치 때문에 막혀 있는 것은 문제인 것 같아요.

-- 행복하신가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있다면.

▲ 우리는 흔히 행운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것도 행운이 따르라는 건데 그건 행복이 아니죠. 행복은 선택과 노력의 대가예요.

다시 태어나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고, 다시 태어나도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행복한 거예요. 저는 학문과 교육을 위해서 평생을 살았는데 또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할 거예요.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관계를 선하고 아름답게 이끌어가는 사람도 행복하죠. 인촌 선생은 “네가 있는 직장을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라. 행복은 만드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했어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죽을 때 “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고 했어요. 이 말은 ‘인생에서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사세요’라는 뜻이에요. 이게 바로 행복인 것 같아요.

<인문학 이야기> 김형석 교수의 장수 비결과 행복론 - 4

-- 인생에서 겪는 고난을 값지다고 했습니다.

▲ 마지막에 나에게 남는 것이 뭔가를 보면, 나를 위해서 한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아요.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이 남았죠. 친구를 만나고애인을 사귀고 결혼하는 것이 그런 것이에요.

그런데 ‘사랑이 있는 고생’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어요. 애를 여섯을 키웠는데, 탈북해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정말 고생했죠.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어요. 사랑이 있는 고생이었죠.

미국 LA 부근에 리버사이드(Riverside)라는 작은 도시가 있어요. 시청 앞에 가면 마틴 루서 킹, 도산 안창호 선생,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 서 있어요. 도산 선생은 나라를 빼앗긴 후 미국에 가서 이곳 오렌지 농장에서 일했죠. 후일 민족지도자가 됐다고 하니까 옛날 농장주가 한인 사회에 연락해 그분의 동상을 세웠다고 해요.

그런데 세 인물은 모두 사랑이 있는 고생을 한 사람들이에요. 다른 사람을 위해 고생의 짐을 대신 진 사람들이죠. 그보다 더 귀한 인생은 없죠. 모두 그렇게 살기는 어렵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어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길이 있어요. 나라 걱정을 하면서 사는 거죠. 예전 종로에 가서 세무사를 만났는데 손기정 선생이 다녀갔다고해요. 상을 받아서 상금이 생겼는데 세금을 내기 위해 왔다고 해요. 세무사는 연세도 높고 상금으로 받은 거니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고 해요. 손 선생은 ‘내가 대한민국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데’ 라면서 세금을 어떻게든 많이 내려고 했다고 해요. 나라를 걱정하며 바로 행복을 찾은 거죠.

-- 여행을 많이 하셨던데, 여행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입니까.

▲ 대학에 있을 때 첫 안식년에 미국을 가게 됐어요. 그때는 조건이 좋아서 비행기 일등석 항공권을 줬어요. 귀국편 항공권을 일반석으로 바꾸니까 유럽 여행을 할 수 있는 경비가 생겼죠. 유럽, 중동, 동남아를 여행했어요. 그게 첫 세계 일주였어요. 10년 후에 아내하고 세계 일주를 한 번 더 했죠.

미국에는 가족이 살고 있고 초청 강연도 있어서 자주 갔고, 애들이 원해서 유럽도 종종 갔어요. 러시아하고 아프리카 오지 빼고는 다 가본 것 같아요. 저는 해외여행이 제 인생을 한 단계 더 높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젊은이들이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놀러 가거나 여행 가서 물건이나 사고 그렇죠. 젊은이들이 여행을 가서 많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 기독교 신앙은 어떻게 갖게 됐나요.

▲ 사람은 살면서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어야 해요. 인생관과 가치관은 학교에서 얻기도 하고, 스승으로부터 배우기도 하죠. 그런데 사람은 더 높은 인생관과 가치관이 어디에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공자님한테 가서 물어보고 얻으면 유교를 믿게 되고, 석가한테 물어봐서 얻으면 불교를 믿게 되죠.

저는 인생관과 가치관을 철학에서 찾으려 했어요. 찾다 보니까 한계에 부딪혔죠. 그래서 예수가 누구인지 뭘 하는 존재인지 책을 읽고들여다보다 보니까 막혔던 문제가 풀리는 거예요. 그렇게 예수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내 것이 됐죠. 단지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사람은 교인이지 신자는 아니죠.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 교수다운 교수죠. 선배 중에 그런 교수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뭔가 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주변을 위해 살다 갔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dkl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3/15 14: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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