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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후야오방 비서 저서 출간 "그의 집안에는 부패분자 없다"

(베이징=연합뉴스) 진병태 특파원 = "후야오방(胡耀邦)의 친인척 가운데는 부패분자가 없다"

29일 중국 신경보에 따르면 후야오방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로 재임시 1959년부터 1964년까지 그의 비서를 지냈던 가오융(高勇)이 베이징 푸창(富强) 후퉁(胡同. 전통골목)의 사합원에서 조석으로 그와 함께 일했던 기억과 공청단 자료를 모아 '후야오방의 비서 시절"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에서 그는 후야오방의 친인척 가운데 부패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후야오방이 남을 위해서 일했을 뿐 자신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의 친인척 가운데 누구도 회사를 차리지 않았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를 얘기했지만 자신이 부자가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가오융은 이런 이유로 후야오방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깊고 양호했다면서 지금도 매년 4월 15일(기일)과 11월 20일(생일)에는 그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산당 총서기를 지낸 후야오방은 지난해 탄신 100주년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의해 온전한 복권이 이뤄졌다.

후야오방은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 초중반에 다소 급진적인 자유화 조치를 시도하고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보수파의 공격을 받다가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축출됐다.

당시 당 지도부는 후야오방에 대해 "정신적으로 오염됐고 자산 계급 자유화에 반대하는 당을 배척했다. '전반서화'(全盤西化·서양 문화 전체를 받아들이려는 사조)에 대한 요구를 용인하고, 학생운동 발생을 야기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의 사망(1989년 4월 15일)은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사후에도 "당을 배척했다"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비운의 총서기' 후야오방은 같은 공청단 계열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체제가 들어선 2000년대에 들어 명예회복이 이뤄지기 시작해 지난해 시 주석이 당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전원 참석한 탄신 100주년 좌담회에서 공개적으로 그의 삶을 극찬하는 연설을 하면서 복권작업이 완료됐다.

中 후야오방 비서 저서 출간 "그의 집안에는 부패분자 없다" - 2

jbt@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29 11: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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