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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영화같은 죽음' 팔메 떠난 지 30년…시민들 추모

암살범 검거 못한 채 사건 해결 미궁…총리도 헌화하며 추도


암살범 검거 못한 채 사건 해결 미궁…총리도 헌화하며 추도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1986년 2월 28일 밤.

일과를 마친 올로프 팔메 당시 스웨덴 총리는 경호를 받지 않은 채 시내 극장에서 아내와 영화를 보고 이동하던 중 총격을 받는다.

등 뒤에서 날아든 탄환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황이었다.

42세 때 총리에 올라 스웨덴에서 나아가 북유럽, 아니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치지도자로 우뚝 섰던 그는 그렇게 세상과 작별했다.

현대 스웨덴사회 형성에 크게 공헌한 팔메 전 총리의 별세 30주기를 맞아 스테판 뢰프벤 총리 등 스웨덴 현직 고위 인사와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스웨덴 '영화같은 죽음' 팔메 떠난 지 30년…시민들 추모 - 2

팔메 전 총리에 대한 존경심이 정치인생을 이끌었다는 사회민주당 소속의 뢰프벤 총리는 27일(현지시간) 당시 사건 현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팔메 전 총리의 거리 묘소를 찾아가 헌화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팔메 전 총리의 죽음을 "치유되지 않은 상처"라고 규정하고 "여전히 우리는 비통하다"고 말했다.

사민당의 주요 인사들도 뢰프벤 총리와 더불어 그를 추도했고, 30년 전 사건이 일어난 극장 주변 거리에서도 시민들의 헌화가 잇따랐다.

28일 오후에도 스톡홀름 시내 문화센터에서 특별 추도행사가 열려 고인의 넋을 기렸다.

팔메는 1969∼76년과 82∼86년 총리를 지냈다.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자유로움을 선호한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는 별개로 그는 총리 재직을 전후한 시기, 파괴력이 큰 정책으로 스웨덴의 대변화를 주도했다.

국내적으로는 노동조합 영향력 증대, 고용안정 보강, 양당제에서 다당제로의 전환과 법적 왕정에서 의회민주정으로서의 전환을 위한 개헌, 아동·노인 복지 정비, 재분배 심화, 임금 억제 등을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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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국제, 외교 현안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주도, 체코 민주화 요구에 대한 소련의 탄압, 핵무기 확산,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 등 다양한 이슈에 관해 강력한 비판론을 전개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 소련의 패권주의를 공격하면서 제3세계 국가의 규합에 공헌했고 이란·이라크전의 중재자로 나서는가 하면 서방 지도자로는 이례적으로 1975년 쿠바를 찾아가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혁명을 지지하기도 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팔메 전 총리는 정파 별로 평가가 엇갈리는 정쟁적 인물로도 분류됐다.

팔메 전 총리의 암살 사건은 30년째 미제 상태이다.

1989년 크리스테르 페테르손이라는 남자가 범인으로 몰려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수많은 음모론도 지속됐다. 팔메 전 총리가 생전, 숱한 현안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정적을 많이 두게 된 것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가 인종차별을 비판한 남아공과 유고슬라비아, 스웨덴의 정보기관은 물론 쿠르드 독립주의자 등이 암살 배후라는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웨덴 검찰당국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이 사건에 대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이가 나와야 해결되는 것"이라며 수사 지속 의지를 다지고 있다.

앞서 스웨덴은 2011년 특별한 살인범죄에 한해서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법적 기반을 만들면서까지 팔메 전 총리의 암살범 검거에 대한 의욕을 보여왔다.

un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29 00: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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