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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판 상록수' 풍덕마을 구순의 '계몽가' 이세영씨

해방 직후 야학 꾸려 한글·역사 수업…마을 현대화에도 일등공신70년간 마을 대소사 기록한 육필 책자 11권 완성


해방 직후 야학 꾸려 한글·역사 수업…마을 현대화에도 일등공신
70년간 마을 대소사 기록한 육필 책자 11권 완성

(충주=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농사일은 안 하고 사진기만 들고 다닌다고 욕도 많이 먹었는데 공적비까지 세워줄지 누가 알았겠어요. 허허허~"

'충주판 상록수' 풍덕마을 구순의 '계몽가' 이세영씨 - 2

충북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들머리에는 커다란 공적비가 있다. 마을 일에 평생을 바친 이세영(90) 씨의 희생정신과 노고를 기리는 비석이다.

이 씨는 마을에서 계몽운동가이자 역사가로 통한다.

그의 가족은 경기도 장호원에서 약국을 하던 이 씨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해방 직전인 1944년 풍덕마을로 이사 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삿짐에 책이 1천 권이 넘고, 이틀에 한 번 우체부가 신문을 배달해 주는 이 씨네 집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또래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문턱에도 못 가 본 아이들이 수두룩했던 때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소학교를 마친 이 씨는 또래 10여 명을 모아 '계몽회'란 야학을 꾸려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좌익단체가 넘쳐나던 시기라 경찰지서에 모임을 신고해야 했다. 경찰은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매일 밤 모임을 하자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않았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회원들은 남폿불 아래에서 열심히 한글을 깨치고 역사도 공부했다. 인근 학교 교장은 소문을 듣고 달려와 영어를 가르쳐줬다.

공부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마을에서는 노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계몽회원들은 공부를 마치면 야경(夜警)을 돌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본 지서와 면사무소는 "열심히 공부하라"며 석유를 대줄 정도로 호의적으로 변했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 씨가 한글 공부를 위해 나눠 준 홍명희 소설 '임꺽정' 책장이 삼베 표지만 남고 모두 찢겨 나갔다. 회원들이 몰래 책을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운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모임이 나중에는 몰라보게 달라졌고, 유명 병원 설립자와 군 장교 등 '출세'한 인물이 많이 배출됐다.

이후에도 풍덕마을에서는 외무·행정·사법고시 합격자도 여럿 배출하고 수석합격자까지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계몽회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씨가 마을에 남긴 족적은 계몽회뿐이 아니다.

약관을 갓 넘긴 1950년부터 구장(이장)을 맡아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1950∼60년대 지역사회개발 사업과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기에 이뤄진 마을 현대화 사업에도 일등공신이었다.

지역사회개발 시범마을 전국 1위에 오르기도 한 풍덕마을에는 각종 지원이 쇄도했다.

1961년에는 국내 최초로 동력 분무기가 마을에 들어왔다.

미국 극동개발재단에서 무상으로 영구 임대한 이 분무기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중앙일간지가 "동력 분무기로 20만 평에 농약을 살포했다"는 내용을 이 씨의 이름과 함께 실을 정도였다.

이 씨는 해방 이래 마을의 대소사를 사진과 글로 기록한 자료를 최근 11권의 책으로 손수 만들었다. 풍덕마을 근현대 역사서인 셈이다.

여기에는 '총 공사비 쌀 13가마'가 들어간 공회당 준공식(1952),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 대사 방문(1962), 첫 경운기 도입(1964), 공동목욕탕 건립(1973)을 비롯한 온갖 마을 역사가 담겼다.

방대한 양의 사진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보면 당시 상황이 생생히 그려진다.

이 씨는 경운기가 처음 들어온 1964년 기록에 "진주 00공업사에서 경운기 운전교육 수료. 농협에서 경운기 인수. 부락총회에서 경운기 값이 비싸고 이용자가 많지 않아 시기상조라 했지만 나중에는 경운기 없이는 영농 못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적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몸부림치다 보니 어느새 70년이 흘렀다"며 "이전 세대들이 힘겹게 살아온 삶의 흔적에서 젊은이들이 작은 교훈이라도 찾는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k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27 08:3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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