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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베를린 우승 80년'…한국 마라톤은 퇴보

세계기록 도전은 사라지고 국내 순위 다툼만 치열 황영조 "1936년 손기정 한을 풀어 드린 게 가장 뿌듯"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손기정 선생님과 대한민국의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 전 정말 간절했습니다."

황영조(46)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27일 스페인 '몬주익의 환희'를 떠올리면서 한 말이다.

고(故) 손기정 선생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고도 가슴에 박힌 일장기 탓에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황 감독은 "선생님께서 '내가 죽기 전에 한국 선수가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걸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한을 풀어 드린 건 내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다"고 회고했다.

이런 소원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이뤄졌다. 몬주익 언덕 오르막길을 지나며 모리시타 고이치를 제쳤고, 가장 먼저 바르셀로나 주경기장에 도착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 마라톤에서 처음 우승한 순간이었다.

잠시 추억에 빠졌던 황 감독의 표정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한국 마라톤계의 냉혹한 현실을 떠올린 탓이다.

한국 기록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이봉주의 2시간7분20초다.

2011년 정진혁이 2시간9분28초에 결승선을 통과한 뒤로는 2시간10분대 벽도 높게만 느껴진다.

2015년 한국 남자마라톤 최고 기록은 2시간12분51초(노시완)였다.

세계 마라톤은 계속 진화했다.

데니스 키메토(케냐)는 2014년 9월 베를린 대회에서 2시간2분57초를 세우며 사상 처음 2시간 2분대에 진입했다.

이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는 많다.

2015년 3차례나 2시간4분대 기록이 나왔고, 올해도 벌써 세 명이 2시간4분대에 들어왔다.

뒷걸음질치는 한국 마라톤과 대조적이다.

황 감독은 "한국 마라톤은 세계무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게 냉혹한 현실이다"라고 개탄했다.

한국은 마라톤 역사에서 장기간 주역이었다.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마라톤이 도입된 이후 30년 동안 정체된 기록을 깬 주인공이 한국인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29분19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아시아 선수 가운데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기록도 세웠다.

1950년대도 한국은 마라톤 강국이었다.

마라톤이 '스피드 혁명'을 겪은 1960년대 이후 한동안 침체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한국이 '강국'의 자리를 되찾았다. 황영조와 이봉주 등 불세출의 마라토너가 등장한 덕분이다.

황영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따냈다.

황 감독은 "1990년대에 세계 상위권 선수가 2∼3명일 정도로 마라톤 수준이 꽤 높았다"며 "2시간10분대 안으로 진입하는 선수도 여러 명이었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세계 정상권 선수와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황 감독은 '간절함' 부족을 쇠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나만 해도 교과서에서 손기정 선생님 이야기를 읽고 꿈을 키웠다. 사이클에서 마라톤으로 전향한 것도 '선생님처럼 되겠다'는 일념에서다"라며 "정말 간절하게 훈련했다. 선생님의 한을, 대한민국의 한을 풀고 싶다는 각오도 강한 동기가 됐다"

"그땐 국가가 나서서 마라톤을 지원했다. 내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나니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마라톤을 국민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있을까. 한국 마라톤에 간절함이 사라졌다"

선수층이 얕아진 것도 마라톤 퇴보를 가속한 요인으로 황 감독은 지적했다.

"마라톤은 프로스포츠처럼 성공해도 엄청난 금전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와 싸워야 하는 마라톤을 누가 선택하겠는가"라며 "선수가 많아져야 '천재'도 나온다. 현재 인프라로는 예전 영광을 되찾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상당수 마라톤 스타의 삶이 불안한 것도 마라톤 중흥에 악영향을 끼친다.

황 감독은 "케냐 출신 등 외국인 마라토너의 귀화를 추진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악재"라고 평가했다.

국내 대회에서 순위 경쟁에 치중하는 풍토도 문제다.

국내에서 2시간12분대 선수들이 10분 벽을 깨려고 모험하지 않은 채 순위만 다툰다는 게 마라톤계의 중론이다.

한국 마라톤이 옛 명성을 회복하려면 결국 '간절함'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황 감독은 강하게 주문했다.

"선수뿐 아니라, 모든 육상 관계자, 체육인이 우리 마라톤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떠올렸으면 한다"

'손기정 베를린 우승 80년'…한국 마라톤은 퇴보 - 2
'손기정 베를린 우승 80년'…한국 마라톤은 퇴보 - 3
'손기정 베를린 우승 80년'…한국 마라톤은 퇴보 - 4

jiks7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27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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