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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주도한 민족대표 손병희 선생의 유허지를 아시나요

송고시간2016-02-26 15:18

옛 청원군이 생가 인근에 복원 생가, 유물전시관, 동상 조성 부인 주옥경 여사, 사위 방정환 선생 자료도 전시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의암 선생은 3·1 운동의 정신이었고 민족의 대표였습니다"

겨울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눈이 내린 26일 오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금암리.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한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1861~1922) 선생의 유허지(遺墟地)는 눈을 맞아 하얗게 변해있었다.

유허지는 역사적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지만, 문화재나 유물은 없는 곳을 말한다.

지금은 청주시로 통합된 옛 청원군이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자는 취지에서 2000년 생가 부근 3만9천734㎡의 터에 동상과 복원된 생가 2채, 유물, 유물전시관을 마련했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방문객이 없어 유허지는 다소 적막했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의 필두답게 동상에서는 위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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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손으로 독립선언문을 들고 곧게 선 모습의 동상은 조국의 독립을 향한 절개 그 자체였다.

바로 옆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는 주차장에 설치된 태극기 32개와 함께 민족대표 33인을 상징한다.

동상 아래 석대에는 천도교의 상징이 새겨져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을 표방한 천도교는 선생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해준 민족종교다.

유허지에는 동학(천도교)의 제3대 교조인 의암의 정신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도 자리 잡고 있다.

전시관 입구에는 일제의 압제에 모두가 하나가 돼 울부짖은 기미년 3월 1일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전시관에는 선생의 부인인 수의당(守義堂) 주옥경(朱鈺卿·1894∼1982) 여사의 사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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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33살이나 많았던 의암 선생과 결혼한 그녀는 3·1 운동을 주도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된 의암 선생의 뒷바라지를 마다치 않았다.

그녀는 감옥 앞에 단칸방을 얻어 옥바라지하며 의암 선생을 따랐다.

주 여사는 선생이 1921년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1922년 5월 19일 임종하기 직전까지 선생의 입에 미음을 떠넣으며 간병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8살이었다.

주 여사는 1924년 천도교 최초의 여성단체인 천도교내수단을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오르는 등 의암의 사상을 이어받아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조성희 문화해설사는 "33살의 나이 차에도 여사께서는 수의당이라는 당호처럼 의암 선생의 정신을 지키려고 한평생 노력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한편에 전시된 또 다른 가족사진에는 의암의 사위였던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1899∼1931) 선생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소파는 1899년 11월 서울에서 태어나 1917년 의암 선생의 딸인 용화씨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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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관에는 천도교총본부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가방, 지팡이, 촛대, 놋대야, 붓, 먹, 가족사진 등 선생의 유물 1백여점도 전시됐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이곳은 연간 1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vodca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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