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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로 칼럼> 너무 낯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관전법

송고시간2016-02-26 14:26

<이병로 칼럼> 너무 낯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관전법 - 2

(서울=연합뉴스) 이병로 논설위원 = 지난 23일 오후부터 우리 국회에서 보게 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뜨거운 이슈가 될 만했다.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국회의원들이 릴레이로 행하는 무제한 토론은 그 자체가 토론 대상이었다. 지난 1973년 제도 폐지된 후 43년 만에 부활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적어도 50대 이하의 연령층은 난생처음 목격하는 정치적 사건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민을 볼모로 한 희대의 선거운동"이라며 맹비난하면서 피켓시위로 맞불을 놓았지만 더 이상 손 쓸 수단은 없었다.

필리버스터 첫 토론 주자로 나선 더민주의 김광진 의원은 5시간 32분 동안 연설을 진행했고, 세 번째 토론 순서인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 동안 발언을 이어 가 국내 최장시간 발언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1969년 8월 신민당 박한상 의원이 3선 개헌 저지를 위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언한 10시간 15분이다. 필리버스터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미국 상원의 기록 24시간 18분보다는 많이 짧지만, 양국 필리버스터의 내용과 형식이 차이가 커서 이런 비교가 의미는 없기는 하다.

사실, 우리는 필리버스터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국회법의 규정 외에는 경험도 시행착오에 따른 수정도 전무하다 시피하니 당연하다.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초기에 진기록 경연장을 보듯 국회를 바라보는 눈이 많았던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기록 경연시스템이 아니다. 현대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기록 때문이 아니라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필리버스터 같은 성가신 제도를 선진 의회주의 국가들이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왜 그럴까. 접근 가능한 자료가 가장 많고 전문적 연구도 다수 공개된 미국 상원의 경우를 보면 큰 참고가 된다. 우리 국회도 그곳을 벤치마킹했다. 필리버스터를 제대로 보는 기초 지식 쯤 될 것이다.

첫 번째 궁금한 점. 왜 이렇게 이상한 제도가 있나.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하원과 달리 미국 상원은 여론과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 `유보' `숙고'의 공간을 각 의원이 확보할 권리로 생각했으며, 필리버스터는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봐야 한다. 19세기에 정착하기 시작한 필리버스터는 토론에 나선 상원의원이 피로에 지칠 때까지 중단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1917년 도입된 것이 토론종결(cloture) 제도인데 출석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요구하는 엄격한 제약이 있어 현실적으로 채택이 불가능했다. 급기야 1975년 의결정족수를 5분의 3분으로 완화하는 합의가 이뤄졌으며 대신 '말 없는(speechless) 필리버스터'를 허용했다.

두 번째 궁금한 점. 필리버스터가 남용되면 미국 상원은 아무 일도 못 하는 게 아닌가. 실제로 그런 지적 때문에 1970년대에 '다중 트랙(multi-tracking)'이 도입됐다. 상원 지도부는 이후 필리버스터 해당 안건은 일단 제쳐놓고 다른 안건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다중 트랙 제도 도입으로 부담감이 덜어지자 필리버스터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기록을 보면 1971~1980년 토론종결 요청이 160건 발의돼 44건 성공한 데 비해, 2001~2010년에는 이 요청이 477건으로 급증했고 240건이 채택됐다. 필리버스터의 진짜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끌어 사회적 공론을 일으키고, 무엇이 정의인지 토론을 붙이려는 데 있다는 작동원리를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마지막, 세 번째로 궁금한 점이다. 이렇게 다수결의 원칙에 반하는 제도가 살아남은 건 웬일인가. 여러 곡절 속에서도 미국 상원이 단순 다수결에 반하는 필리버스터를 유지한 까닭은 '과반을 가까스로 넘은 정파'가 '과반에 근접한 소수 정파'의 반대를 무시하고 '획기적인 정책 변화'를 꾀해서는 안 된다는 정신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가 뒤바뀔 때마다 화살이 반대로 돌아오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필리버스터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리버스터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숙의(熟議:deliberative)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며 상원은 '위대한 숙의 기구'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숙의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에 합의의 과정을 결합한 개념이다. 숙의 민주주의의 시원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 집단의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잘 이용하는 능력이 민주주의적 선택의 장점이라고 보았고, 이런 과정이 바로 숙의라고 말했다. 정치 단위의 폭과 복잡성이 그리스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게 커진 현대에 '숙의 민주주의적' 요소를 접목하려는 시도로 필리버스터를 바라보는 학자들이 상당하다.

inn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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