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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香萬里> '트럼프'를 낳은 미국의 보수…제대로 가고 있나?

WP 진보논객 디온 주니어 『미국의 보수는 왜 잘못가고 있는가』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트럼프를 만든 건 다름 아닌 공화당이다"

파죽의 연승행진을 이어가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기존 정치의 공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는 이단아다. 정치와 연예의 경계를 허무는 기괴한 언행을 보이고 심지어 멕시코계 이민자들을 향해 "강간범"이라고 막말을 퍼붓는데도 미국의 보수는 지금 '트럼피즘'(Trumpism)에 열광하고 있다. 과연 트럼프가 올해 대선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인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유명 진보논객인 E.J. 디온 주니어가 최근 펴낸 『미국의 보수는 왜 잘못가고 있는가』는 트럼프 열풍을 잉태한 보수정치의 '뿌리'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배리 골드워터가 1964년 신(新)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공화당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한 미국 보수의 행로가 어떻게 원조적 가치인 '중용(中庸·moderation)'을 저버리고 극단화의 길로 치닫고 있는가를 저널리스트의 감각으로 낱낱이 해부했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지난 50여간 미국 보수가 걸어온 길을 "실망과 배신의 악순환"이라고 단정한다. 역대 보수주의 정권은 선거 때 지지자들에게 내건 '약속'을 집권 후 거의 지켜내지 못했다. 이념적 선명성에만 집착하는 태도로는 미국의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직감한 정권들은 늘 '타협'과 '중도'를 택했다. 그러나 선거국면이 돌아오면 보수정치의 주류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급격히 '우회전'을 하며 다시 지지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스로의 정책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기는 커녕 타협과 중도를 비판하며 이념적으로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에 바빴다.

'작은 정부'는 보수정권이 선거 때마다 즐겨 써먹는 대표적 공약이지만 실상은 유토피아와 같은 허상이라는게 저자의 말이다. 정치의 현실은 재정적으로 개입할 능력을 가진 '큰 정부'와 시장의 실패를 미세조정할 '규제', 소득불평등을 완화할 '연방 프로그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보수정권은 오히려 스스로의 공약보다 진보적 어젠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례로 리처드 닉슨은 진보 쪽이 주창해온 소득보장제를 도입했다. "정부가 문제"라고 외쳤던 로널드 레이건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재정정책과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 복지정책을 받아들였고 연방정부의 적자는 더 늘었다. 뒤이은 조지 H.W. 부시는 대표적 민권법인 장애인법에 서명했고 연방정부의 역할을 늘리기 위한 증세를 시도했다. 아들 조지 W. 부시도 정권초기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을 내걸며 중도로 향했다.

이 같은 숱한 정책적 오류에도 미국 보수정치를 대표하는 공화당은 '궤도수정'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갈수록 더 강경하고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다름아닌 골드워터가 뿌려놓은 씨앗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통찰이다.

1960년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라는 책으로 이름을 날린 골드워터는 '중도'와 '타협'을 결연히 거부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다. "자유를 지키는데 있어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며, 정의를 추구하는데 있어 중용은 미덕이 아니다"라는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연설문은 이후 미국 신보수주의 운동의 길을 가리키는 방향타가 됐다. '큰 정부'를 죄악시하고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저항하는 새로운 사조 속에서 공화당은 '링컨의 당'(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이었음)에서 '딕시(Dixie·남부로 대변되는 강경 보수층을 지칭)의 당'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보수정권의 거듭된 실패 속에서 중도 쪽으로 선회하려는 공화당 주류의 움직임은 골드워터의 후예들에 의해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신 보수주의 운동을 후원하는 가장 큰 세력은 폭스뉴스와 같은 케이블TV와 토크 라디오, 그리고 코크 형제처럼 막대한 돈을 대선판에 푸는 거부(巨副)들이었다. 당의 주류는 '목소리'가 크고 '힘'이 있는 이들에게 도전하기보다 점점 더 순응하는 쪽을 택했다. 중도를 지향하고 온건한 목소리를 내온 자유주의적 공화당원들은 철저히 주변으로 밀려났다.

민심의 큰 흐름에서 멀어지고 있는 공화당은 점점 더 수권(授權)이 어려운 정치세력이 될 것이라는게 저자의 저주 섞인 전망이다. 전통적 지지층인 백인의 인구는 줄고 민주당의 정책에 친근감을 느끼는 비(非)백인 인구가 늘어나는 가운데 정책적 타협을 거부하고 이념적 선명성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비 백인의 투표율이 낮고 '게리맨더링'과 같은 정치공학이 통한 2010년과 2014년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석권했고 의회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큰 판의 승부인 대선에서 민심을 얻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보수의 '극단화'는 공화당 자체의 문제를 넘어 미국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위기이기도 하다. '민주당 행정부'와 '공화당 의회'라는 기형적 통치구조가 고착화될 우려가 있다는게 저자의 우려다. 권력을 상호견제하는 순기능은커녕 오히려 '분열된 통치구조'(Divided Government)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정쟁(政爭)이 새로운 일상이 되고 연방정부 '셧다운'과 같은 파국이 빚어지는 것은 이런 파행적 구조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잘못된 길'을 걷는 미국의 보수가 복원해야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중용'이라고 저자는 주저 없이 말한다. 바로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1729~97)가 프랑스혁명의 과격성을 비판하며 강조한 보수주의자의 자세다. 가깝게는 민주당 정권의 뉴딜 정책을 과감히 수용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채택한 중도의 노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게 저자의 주문이다. 동양적 가치도 함축한 '중용의 정치'는 비단 미국의 정치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에도 주어진 화두다.

사이먼&슈스터 출판. 544쪽.

<書香萬里> '트럼프'를 낳은 미국의 보수…제대로 가고 있나? - 2

rhd@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27 09: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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