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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3·1운동 불모지' 오명 벗었다…"수천명 읍내 시위"

일제 판결문·출판물 통해 확인, 내달 1일 충주 만세운동 첫 기념행사


일제 판결문·출판물 통해 확인, 내달 1일 충주 만세운동 첫 기념행사

(충주=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1919년 3·1 운동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충북 충주에서 당시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난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충주 '3·1운동 불모지' 오명 벗었다…"수천명 읍내 시위" - 2

충주3·1운동기념사업회는 25일 "1919년 3월 1일 이후 충주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이 벌어진 사실을 일제강점기 법원 판결문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919년 3월 11일 충주 달천리에서 천도교인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불러 충주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홍종호, 김흥배가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이튿날인 12일에는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수천 명이 충주읍내에 집결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충주읍내 만세운동은 충북 최초의 만세운동으로 알려진 3월 19일 괴산 만세운동보다 1주일가량 앞서는 것이다.

충주 지역에서는 4월 1일 신니면 용원리에서의 소규모 움직임을 빼고는 이렇다 할 만세운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앞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옥파 이종일이 인종익을 시켜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충주에 배포하도록 했으나 인종익이 3월 1일 배포 직전 검거됐다.

3월 10일에는 충주간이농업학교 졸업 기념 야유회에서 교사 유흥식(유자명), 학생 오언영·장천석, 유석보 등이 3월 15일 충주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했으나 밀고로 실패했다.

이 일을 계기로 유자명은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4월 8일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귀국한 김종부, 서울신학교 학생 장양헌, 오언영, 감리교인 최명희가 칠금리에 있는 권태은의 집에서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동원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한다.

이어 장양헌이 서울에서 가져온 일제를 향한 경고문을 교회에서 등사하고 태극기, 독립가 등을 준비했다.

최명희는 공립보통학교 교사 김연순에게 학생들을 동원해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으나 경찰에 발각돼 수포가 됐다.

당시 체포된 장양헌, 김종부, 오언영, 최명희 등은 청주까지 도보로 압송됐다. 이들은 압송 내내 만세를 부르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고 기념사업회는 전했다.

기념사업회가 공개한 공주지법, 경성복심법원, 고등법원 판결문을 보면 김종부는 징역 10월, 오언영·장양헌·최명희는 징역 6월을 선고받았고, 권태은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기념사업회는 유자명이 손으로 쓴 '한 혁명자의 회억록'과 3·1운동 비사(이상헌, 1959),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펴낸 독립운동사 제3권(1975) 등도 근거 자료로 제시했다.

사업회는 충주읍내 만세운동의 정신을 기려 기념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하고 오는 3월 1일 첫 기념행사를 연다.

충주 '3·1운동 불모지' 오명 벗었다…"수천명 읍내 시위" - 3

충주3·1운동기념사업회 전홍식 회장(한국교통대 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충주에 변변한 만세운동이 없었다는 것은 일제가 펴낸 책 내용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충주에서는 이름에 걸맞게 의병뿐 아니라 동학, 독립운동도 활발히 이뤄졌다"고 말했다.

ko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25 14:3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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