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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노무자를 잡아갔다' 日記로 본 일제 강제동원사

송고시간2016-02-21 06:45

민족문제연구소 '일기로 구성한 일제말 전시체제하의 일상' 논문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군리원(郡吏員)과 면서기들이 밤중에 민가에 돌입해 노무자를 잡아갔다. 북선(북한 지역) 역부(노동자)의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다."

일제강점기 유생이었던 김주현(전남 장흥군)은 1944년 3월 9일자 일기에 이같이 일본의 만행을 적었다.

필자가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적는 매체인 일기를 분석해 태평양 전시체제 때 일제의 동원 실태가 어땠는지 그려낸 논문이 처음 나왔다.

논문이 활용한 일기는 일제강점기 때 유생 3명이 쓴 일기로, 이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정치적인 문제에 비판적인 성향의 인물들이었다.

이들 일기에는 일제의 강제 동원이 '모집→관 알선→징용'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1942년 일기에는 동원이 모집의 형태를 띤다.

김인수(충북 증원군)의 1942년 8월 26일 일기에 보면 '이강길이 산업전사(당시 일본이 노동자를 모집하는 선전용으로 사용한 단어)로 선발돼 충주경찰서에 가서 며칠 머물렀으나 나이가 많아 불합격돼 돌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이듬해인 1943년이 되면서 동원의 강제성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김주현의 1943년 8월 10일 일기에는 "응하지 않는 자와 갈 수 없는 자를 고려하지 않아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부락 사람 모두가 제비뽑기해서 동원자를 선정한다"며 "선정된 자는 도망가기에 관은 구시대에 죄인 잡아가듯 노동자를 보면 선출 여부를 불문하고 곧바로 잡아간다고 한다"고 나와 있다.

노동력 강제동원의 최종 형태인 징용령에 의한 국내외 동원이 일기에 등장한 것은 1944년 7월 중순부터다.

김주현의 일기에 따르면 김주현의 둘째 아들, 막내 동생 그리고 집안 머슴이 모두 징용령으로 신체검사를 받고 끌려갔다.

그가 1945년 1월 19일자 일기에 적은 글은 강제동원의 유형과 실태를 잘 보여준다.

"17∼55세의 조선 인민을 모두 저들의 모집 징용 장부에 기재했다. 여자 역시 14∼25세로 미혼인 자, 과부인 자, 결혼했지만 자식이 없는 자는 방직공장과 군부 조수로 징용한다.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여자 역시 끌어가니 이는 오랑캐요, 짐승이다."

논문은 또 일기에 나온 군사 동원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정관해(경기도 용인)의 일기에 따르면 1940년 지원병을 뽑기 위한 마을 주민회의를 했으나 지원병은 명목일 뿐 실은 강제징집이었으며, 주재소에서 신체검사를 한 뒤 합격자는 학력이 떨어져도 모두 동원됐다.

강제동원을 피하려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물자 동원도 계속되면서 조선인들의 생활은 파탄이 났다.

김인수의 1944년 4월 28일 일기에는 "윤주선이 (아들이) 산업전사로 선발되자 파산해 떠돌아다니니 이는 피신하기 위한 계책"이라고 적혀 있다.

김주현의 1944년 6월 9일 일기에도 "저들의 곡식 공출령이 매우 가혹해 집집마다 수색해 이틀치 식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둬가기에 2∼3두를 땅에 묻거나 산속에 감추는 것은 민가의 일상이 됐다"고 나와 있다.

논문은 "당시 신문이나 잡지 뿐 아니라 일기에서도 일제의 재정과 물자 동원의 실태가 확인됐다"며 "징용과 징병, 창씨개명 등으로 집약되는 일제 말의 일상은 이처럼 식민권력에 의한 가혹한 수탈과 통제로 점철됐다"고 적었다.

이번 논문은 강제동원 실태를 조사한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내달 5일 일본 시민단체가 현지에서 개최하는 강연회인 '제9회 강제동원진상규명 전국 연구집회'에서 소개된다.

kamj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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