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역사 야학, 재정난으로 운영 '빨간 불'
송고시간2016-02-21 07:15
서울 중랑구 묵동 태청야학…21일 학교서 '후원의 오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40여년간 수천명의 학생들이 거쳐 간 유서 깊은 야학이 건물 재건축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재정에 '빨간 불'이 켜졌다.
야학 교사들과 재학생들은 학교를 살리려고 십시일반 이전 비용을 모았지만, 월세가 배 이상 오른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21일 서울 중랑구 묵동에 자리한 '태청야학'에 따르면 이 야학은 현재 세들어 있는 건물이 재건축으로 내달 말 철거를 앞두고 있어 내달 초 같은 동네 다른 건물로 이전해야 한다.
1974년 개교한 태청야학에서는 현재 50대 이상의 학생 70여명이 대학생과 직장인, 교사 등 50여명의 자원봉사자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워낙 학생들의 출석이 들쭉날쭉해 이곳을 거쳐 간 학생의 통계는 없지만, 수천명 선인 것으로 야학은 추정한다.
지금 건물 월세는 60만원인데 이전 후 월세는 150만원으로 배 이상 훌쩍 오르게 된다. 지원금을 전부 받는다 해도 월세 내기도 빠듯하다.
무료 야학인 태청야학에는 평생교육진흥원이 연 800만∼1천만원, 중랑구청이 400만원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교사 회비와 후원금, 후원주점 이익금을 더해도 연 수입이 2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17년째 이곳에 다닌 강선미 교사는 "학생 분들이 '폐교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실 때마다 '계속 운영될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드리지만,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하지만 모두가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전했다.
강 교사는 "이전에도 야학이 재정난으로 폐교할 뻔했는데 현재 교장 선생님이 사비를 털어 명맥을 이었다"며 "수천명의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쁨을 준 우리 야학의 장래가 어두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태청야학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생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교사가 돼 활동하기도 했고, 교사들끼리 가르치다가 정이 들어 결혼하기도 했다.
태청야학을 8년째 다니는 선영임(63·여)씨는 "한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부하기 시작해 지금은 중등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며 "아무것도 모르다가 한자한자 깨우쳐 가는 게 굉장히 기뻤다"고 전했다.
선씨는 "낮에 일해서 저녁에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배움의 즐거움 때문에 빠지지 않고 수업에 나온다"며 "꼭 있어야 하는 학교인데 없어질까 봐 너무 걱정이라 학생들도 없는 살림에 1만원, 2만원씩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태청야학은 이날 오후 3시 학교에서 재학생들의 공연과 시낭송 등으로 꾸민 '후원의 오후' 행사를 연다.
강씨는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정부 지원금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며 "관심 있는 분들이 후원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kamj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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