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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왕훈의 데자뷔> 대학 등록금 인하, 반갑기는 하지만…

<추왕훈의 데자뷔> 대학 등록금 인하, 반갑기는 하지만… - 2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논설위원 = 전국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가운데 99%가 올해 1학기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마도 교육부가 구체적인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1.7%)까지 제시하면서 각 대학에 '협조'를 강력히 요청한 것이 효과를 발휘한 듯하다. 어쨌든 끝없이 오르기만 하는 줄 알았던 대학 등록금의 상승 폭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축소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깨가 무거운 학부모, 학생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는 국가장학금의 대폭 확대와 함께 이 정도로 대학 등록금을 안정시킨 것만으로도 '업적'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반값 등록금'을 내놓지 않았느냐"면서 지금의 대학 등록금 수준이 여전히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등록금이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간다면 물론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독일은 대학 등록금이라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좀 좋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대학 가는 데 드는 부담을 줄이거나 없애서 대학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가. 올해 1학기 대학 등록금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딸린 도표를 보니 전국의 4년제 대학이 158개, 전문대학이 114개, 도합 272개나 된다. 통계청의 '201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14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70.9%에 이른다. 고등학교 졸업자라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는 애당초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보다는 직업 교육을 받기로 한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고교 수업과정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학력 미달의 학생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까지 모두 포함해 고교생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하는 대학에 진학한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2005년 대학 진학률 82.1%에 비하면 한풀 꺾인 추세라는 것이 그렇다.

고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어느 정도의 비율이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지에 관해서는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꼽을 '일자리와의 매치'를 생각한다면 70%가 넘는 대학 진학률은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경제 구조가 고도화하고 지식산업의 비중이 커지면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의 비율이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동년배 인구의 70%가 대졸 학력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경제 체제는 상상하기 어렵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자료를 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자는 20만여 명, 진학률은 33.2%에 불과했다. 2014년 대학 진학자는 36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반면에 취업에 나선 고졸자는 1990년 26만여 명에서 1996년 22만여 명으로 줄었다가 2014년에는 6만여 명으로 급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졸 일자리가 36만 개인 반면에 고졸 일자리는 6만 개인 경제보다는 그 반대인 경우가 더 현실적으로 떠오른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가 당면한 최대의 난제 가운데 하나인 청년 실업은 근원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고 해야 하겠다. 대졸자들이 그 학력에 걸맞다고 생각하는 일자리는 한정돼 있는 반면 대졸 구직자는 그 몇 배에 달한다고 하면 취업자보다 실업자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범대학의 예를 보자. 2013년 전국의 사범대 졸업자는 1만2천38 명에 달했으나 그해 중등교과 교사 모집 인원은 4분의 1 수준인 3천381 명에 불과했다. 비사범대의 교직 과목 이수자나 교육대학원의 교직 이수자 등 다른 경로로 교사가 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범대 졸업생만 보더라도 한 해 졸업생 가운데 4분의 3은 교사가 되지 못한다. 이들은 이듬해 재도전할 수밖에 없게 되고 해가 갈수록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게 된다. 결국 상당수의 졸업생들은 전공이나 대졸 학력과는 거리가 먼 일자리 또는 비정규직과 실업자 신세 가운데 쓰디쓴 선택을 해야 한다.

어찌 사범대뿐이겠는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모든 대학, 모든 대학생이 이와 다르지 않다. 정부가 로스쿨을 도입한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고시 낭인'을 없애겠다는 명분이었다. 언제일지도 모르는 사법고시 합격을 위해서 수만 명이 기약 없이 청춘을 바치는 것이 국가적인 낭비이니 로스쿨 입학시험으로 우선 이들을 걸러내고 그 관문을 통과한 학생들에게는 '웬만하면' 변호사 자격을 주자는 것이다. '고시 낭인'이 문제가 된다면 수적인 면에서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취업 낭인'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다시 대학 등록금 문제로 돌아가 보자. 대학 진학자의 상당수는 대졸 학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나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고 연간 4조원 규모의 재정을 동원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도 모자라 대출까지 해 주며 대학을 가라고 부추기는 것이 옳은 일인가. 차라리 대학 진학에 들일 시간과 돈을 직업 교육이나 창업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더욱 효율적이지 않나. 대학과 대학생 수가 대폭 줄어든다면 한정된 국가 재원으로 공부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학생들에게 장학 혜택을 베풀 여지는 더 커질 수 있다. 독일 대학의 학비가 무료인 것도 '꼭 필요한 사람'만 대학에 진학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의무ㆍ보편 교육이라면 몰라도 고등교육에서만큼은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택적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직장이든 '손발'의 역할을 하는 생산직ㆍ하급직이 저변을 이루고 고학력이 필요한 관리직은 소수인 피라미드식 구조인 경우가 보통이다. 동년배 가운데 고등교육을 이수할 만한 의지와 학업능력이 있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도록 하고 더 많은 학생은 고등학교부터 직업 교육을 받는 구조가 바람직할 것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첨단 기술도 중요하지만, 단순하더라도 오랜 기간 숙달되고 숙련된 장인의 기술도 그에 못지않게 가치가 있다. 다시 독일 이야기를 하자면, 대학 진학률이 40%에 불과한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집단은 대졸 엔지니어들이라기보다는 전통산업 분야의 마이스터들이라고 한다.

물론 뿌리 깊은 학벌 숭배의 풍조를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긍지와 자존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국민적 자의식이 형성돼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ㆍ경제적 토대도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으면 이 모순된 구조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 청년들의 좌절이 상당 부분 과잉학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 나라는 사서 병치레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 '반값 등록금'은 당장은 달콤해 보여도 청년 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19 07:3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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