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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원 "엄마가 된 딸이 부르는 엄마의 노래죠"

가곡·동요·가요 담긴 리메이크 앨범 '엄마의 노래' 발표 "이 시대 어머니 위로하고, 딸 세대에 들려주고 싶었죠"


가곡·동요·가요 담긴 리메이크 앨범 '엄마의 노래' 발표
"이 시대 어머니 위로하고, 딸 세대에 들려주고 싶었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싱어송라이터 권진원(50)의 엄마(71)는 어떤 사람일까.

"강인한 한국의 대표적인 여인상이에요. 합창반에서 노래를 무척 잘하는 여고생이었지만 결혼해 가족에게 온전히 희생하셨죠. 특히 오랫동안 아픈 남편을 위해 그 세월을 힘든 내색 안 하고 간호하셨어요."

4남매 중 장녀인 권진원은 그런 엄마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평소 곰살맞게 '엄마 사랑해'라고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노래로 한껏 전하고 싶었다. 나아가 이 시대 어머니들의 외롭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낸 앨범이 '엄마의 노래'다.

권진원 "엄마가 된 딸이 부르는 엄마의 노래죠" - 2

최근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한 그는 "나도 딸 하나가 있는 엄마가 되고보니 우리 엄마, 더 나아가 모든 어머니들의 고단한 마음을 노래로 위로하고 싶었다"며 "또 할머니 시대 한국의 노래가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지 새 옷을 입혀 딸 세대에 들려주고 싶었다. 이젠 엄마가 된 딸이 부르는 엄마의 노래로,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라고 소개했다.

선곡을 위해 엄마에게 '예전에 어떤 노래를 좋아했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여고 시절 합창반에서 부른 '동심초', '그집앞', '동무생각' 등을 떠올렸다. 그렇게 고르다 보니 가곡(동심초, 사공의 노래), 동요(가을밤, 엄마야 누나야, 고향의 봄), 가요(하숙생, 세노야) 등 장르를 막론하고 한국적인 정서가 담뿍 담긴 아름다운 선율의 명곡들이 수록됐다.

그는 "2012년부터 데모곡 작업을 했다"며 "좋은 노래를 찾고 또 찾아 두 번째 앨범을 내도 될 정도로 많은 곡이 모였다. 내가 '노래를찾는사람들' 출신인데 그야말로 노래를 찾는 사람이었다. 창작자이지만 좋은 노래를 찾는 작업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르는 달라도 권진원과 피아니스트 박만희가 함께 편곡한 곡들은 단 한 곡도 튀지 않는다. 가곡이 가곡답고, 동요가 동요다우면 물과 기름이 될 수 있으니 그 경계가 사라지도록 하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여기에 팝과 포크, 클래식을 넘나드는 권진원의 음악 요소가 잘 녹아들고, 재즈와 팝을 오가는 뮤지션들의 연주가 더해지자 3대(代)가 소통할 음악으로 탄생했다.

"음악에 각이 지지 않도록 드럼을 배제하고 루바토(rubato·자유로운 템포)로 불렀어요. 느린 부분은 아주 느리게, 몰아치는 부분은 한껏 몰아치듯 불러 라이브 앨범 같은 느낌을 줬죠. 정교하게 가다듬지 않고 '원테이크'(곡 전체를 한 번에 노래하고 연주하는 방식)로 녹음했어요."

그는 "엄마는 '동심초'를 좋아하고 26살인 내 딸은 '하숙생'을 좋아하더라"며 "딸이 요즘 사운드로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유일한 신곡으로 직접 만든 '엄마의 노래'에는 부엌에서 밥을 짓던 엄마의 아련한 모습을 담았다.

'저녁 밥상 차리는/ 우리 엄마 뒷모습 왜 슬퍼 보일까 (중략) 시간은 잡을 수 없이 간다/ 거울 속 모습도 달라진다/ 세상은 점점 흐려진다~'('엄마의 노래' 중)

"고교 시절 엄마가 마흔 살 얹저리셨죠. 학교 갔다 오면 전 하루 일과를 재잘거리고 엄마는 저녁밥을 지으며 콧노래로 가곡을 흥얼거리셨어요. 그때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매일 우리를 위해 밥과 반찬을 만드는 고마운 엄마'란 생각을 했죠. 그때도 고마웠지만 지금 그 마음은 눈물이 날 정도로 커요."

권진원이 리메이크 앨범을 낸 건 처음이다. 자신의 앨범을 낸 건 2011년 7집 '멜로디와 수채화' 이후 5년 만이다. 그러나 지난해 재즈 피아니스트 한충완, 해금 연주자 강은일과 프로젝트 앨범 '만남'을 발표하는 등 음악 결과물은 꾸준히 내놓았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강단에 서면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사실이지만 창작이 시간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며 "두가지를 병행하는 게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학생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정신적으로 한층 풍요로워졌다. 내 결과물을 내는 걸음은 느릴지라도 난 음악 안에 살고 있고 음악과 쉼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985년 강변가요제로 데뷔한 그는 1988~1991년 노래를찾는사람들을 거쳐 1992년 솔로 1집 '북녘 파랑새'를 냈으니 어느덧 데뷔 31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권진원의 음악도 진화했지만 음악도 권진원을 변화시켰다.

"20대 때는 감정 조절 없이 거침없이 노래했어요. 30대 때는 한층 밝은 정서로 포근하고 따뜻하게 다가간 것 같아요. 40대 때는 6집 '나무' 앨범부터 표현력이 달라졌죠. 인생은 만남과 배움과 깨달음의 길이란 생각을 했고 그게 음악에 담기며 한층 차분해진 것 같아요. 그래도 '노찾사' 시절부터 이어진 '사람을 위한 음악'이란 정신은 변함없답니다."

권진원 "엄마가 된 딸이 부르는 엄마의 노래죠" - 3

mim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15 07:4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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