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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냉전시대 출혈경쟁과 상호봉쇄…결국 경제력이 승부 갈라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를 기점으로 한반도에서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논의에 중국과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국·미국·일본과 북한·중국·러시아 간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신냉전'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도 최근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과의 긴장으로 "세계가 신냉전의 시대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과거 냉전 시기를 되돌아보면 세계 경제의 1위와 2위를 차지했던 미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은 각각 블록을 형성, 경제·정치·군사·우주과학 등의 분야에서 경쟁했다. 양측은 상대방에 대해 철저한 봉쇄 정책을 펼쳤다.

양측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결과적으로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그룹이 몰락하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그룹이 승리했다.

냉전시대의 승부를 가른 것은 군사력이나 우주항공기술보다는 경제분야에서의 경쟁력이었다. 군사력이나 우주항공기술 역시 경제의 뒷받침 없이는 성장할 수도 없고 유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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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의 'G2'…미국과 소련의 출혈 경쟁

현재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양분하고 있지만 과거 냉전 시기에는 구(舊)소련이 정치·군사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미국에 도전할만한 국가였다.

유엔 통계국의 집계 자료에 따르면 1970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759억 달러, 소련의 GDP는 4천334억 달러였다. 격차는 나지만 전 세계에서 나란히 GDP 1·2위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세계 3위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의 GDP는 2천9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련은 갈수록 경제력에서 미국에 뒤떨어졌다. 사회주의 체제가 갖고 있는 근원적 한계에 따른 결과였다. 효율성과 창의성, 이에 따른 경쟁력을 사회주의 체제는 갖추기 어려웠다.

1983년 소련의 GDP는 9천930억 달러까지 올랐지만, 이 시기 미국의 GDP는 이미 3조6천381억으로 소련을 3배 이상 앞서나갔다.

존 루이스 개디스의 '냉전의 역사'에 따르면 소련은 미국의 경제력을 끊임없이 의식했다.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는 1959년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건배사를 하며 "내일은 우리도 당신들만큼 잘 살 것이고, 그 다음 날에는 더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은 우주과학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번 북한의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에서 확인했듯이 우주과학은 군사력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양국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우주 개발에 나섰다.

소련은 1957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 1961년에는 세계 최초로 사람을 태운 우주선을 쏘아 올렸다.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의 우주인으로 이름을 높이자 미국은 1969년 닐 암스트롱을 태운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내면서 출혈 경쟁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세계 주요 2개국(G2)이었던 소련이 1991년에 무너졌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엇갈리지만 경쟁력을 상실한 경제 시스템에서 무리한 우주 과학기술 투자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따른 군비 부담도 하나의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많다.

결과적으로는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미국과의 경쟁에 따른 비용부담을 소화하지 못한 셈이다.

◇ 공산권에 대한 수출 금지 '코콤'…단절된 세계 경제

냉전시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이 이끄는 공산주의 진영이 철저히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양측은 기본적으로 봉쇄 정책을 택했다.

이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공산권에 대한 전략 물품 수출 통제를 담당한 코콤(COCOM.대공산권수출조정위원회)이다.

코콤은 군사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거의 모든 민간 기술의 수출을 금지했다.

가입국은 호주,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일본,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페인, 터키, 영국, 미국 등 17개국이었으며, 대부분의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이 비슷한 규제를 적용받았다.

코콤은 냉전 기간의 가장 중요한 규칙이었으며 이를 어길 경우에는 미국으로부터 심각한 무역 제재를 받았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은 최근 해제된 이란 경제제재나 상원을 통과한 북한 제재안처럼 이때부터 경제 봉쇄를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한 것이다.

일례로 1987년 일본의 도시바가 고성능 스크류 제작용 기계를 소련에 수출했다가 이 기계가 소련 잠수함 부품 생산에 사용된 사실이 알려졌다.

도시바는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고, 이후에는 사태의 책임을 지고 도시바 회장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면서 1994년 3월 코콤은 해체했고, 세계경제도 공식적으로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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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v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15 05:5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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