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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100년> ④ "아직도 아픔을 달래며 산다"

소록도에서 유년시절 보낸 한센인 강선봉씨의 '소록도' 회상

(고흥=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그때 소록도는 천국(天國)이 아닌 천국(賤國)이었지"

1940년대 '나환자수용소'로 불린 소록도갱생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강선봉(77)씨는 참담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지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강씨는 한센병 환자인 어머니와 함께 1946년 소록도에 수용됐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강씨는 일본인이 물러간 소록도에 미군의 트럭과 배에 실려왔다고 기억했다

해방 전 소록도는 나환자에 대한 강력한 격리정책을 시행한 일제가 학대, 감금, 강제노역 등으로 수용자에게 온갖 탄압을 자행한 곳으로 악명 높았다.

<소록도 100년> ④ "아직도 아픔을 달래며 산다" - 2

강씨는 한센병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청년 시절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잠을 자다가도 소록도라는 말을 들으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일본이 물러간 뒤 소록도 사정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한센병 환자들 사이에서 떠돌았지만 강씨 모자가 직접 경험한 소록도는 인간의 도리가 사라진 곳이었다.

모진 매질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진 수용자의 시신이 자살한 변사체로 둔갑했다는 등 일본 강점기부터 이어온 소록도의 인권유린에 대한 얘기는 여전했다.

한센병 환자가 아니었던 강씨 또한 썩은 콩을 훔쳐먹었다는 이유로 혹독한 벌을 받고 건강을 해쳐 열악한 소록도 환경에서 결국 '나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소록도에서 보낸 한 맺힌 세월을 '천국으로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는데 책 이름의 천국을 '天國'이 아닌 '賤國'으로 쓰기도 했다.

강씨가 '지옥의 섬'을 탈출할 수 있었던 계기는 소록도에서 익힌 의료기술 덕분이다.

소록도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강씨는 섬 안 치료인력의 절대 부족을 메우려고 설립된 의학강습소에서 간호와 의료업무를 배워 삶의 밑바탕을 마련했다.

1962년 오마도 간척사업에 동원돼 뭍으로 나온 강씨는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찾고 사람 사는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무렵 소록도갱생원도 수용격리시설에서 차츰 한센인 치료시설로서 역할을 점차 강화했다.

소록도를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섬을 찾지 않았던 강씨는 48년만인 2010년 섬으로 돌아왔다.

한센병 때문은 아니지만 건강이 나빠지자 그동안 치료와 치유의 공간으로 변한 소록도를 다시 찾은 것이다.

강씨는 현재 섬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해 후손에게 남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세상이 달라지고 소록도도 '賤國'이 아닌 그야말로 '天國'처럼 변했지만,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도 한센병에서 완치된 회복자를 '한센인'이라고 부르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그렇다면 감기 환자도 '감기인'이라고 불러야 되냐"고 되물었다.

강씨는 "세상처럼 소록도도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소록도의 눈물과 한 맺힌 가슴을 어루만지며 살고 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h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11 10: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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