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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100년> ① '작은 사슴 섬'을 가다

아픔 간직한 평온한 시골 마을 "흐릿해지겠지만 잊지 말아야"
한맺힌 섬을 육지와 연결한 소록대교
한맺힌 섬을 육지와 연결한 소록대교소록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길이 1천160m의 연륙교인 소록대교. 착공 8년만인 2009년에 개통됐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 제공>>

<※편집자주 = 1917년 전남 고흥 소록도에 병원을 세워 한센인들을 집단수용해 치료와 관리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0년을 맞습니다. 지금은 현대식 병원과 거주지에서 한센인 550여명이 치료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 작은 섬에 6천여명의 한센인이 수용되기도 했습니다. 치료보다는 격리와 통제 속에 강제노역과 일상적인 폭행·감금으로 얼룩진 아픈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흐릿하게 남아 있는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상식은 그 시절에는 더욱 강한 멸시와 천대로 이어져 육체의 아픔보다 더욱 큰 상처를 그들에게 남겼습니다.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계기로 소록도가 지닌 그들의 역사와 목소리를 담은 기획기사 5꼭지를 송고합니다>

(고흥=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광주에서 차로 보성을 거쳐 고흥까지 2시간 남짓 달리면 남도의 반도 끝 녹동항이 나온다.

녹동항은 여느 항구와 다를 바 없는 곳이지만, 건너편 바다 코 끝에 닿을 듯한 가까운 곳에 슬픈 역사를 품은 조그만 섬을 두고 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새끼 사슴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섬, 소록도(小鹿島)다.

2009년 다리가 놓이면서 지금은 차를 타고 뭍과 섬을 오가지만, 그 전에는 지척에 두고서도 배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그야말로 외딴 섬이었다.

<소록도 100년> ① '작은 사슴 섬'을 가다 - 2

소록대교를 건너 섬을 가로지르며 거금도까지 이어진 27번 국도를 조금만 따라가면 작은 해안가를 끼고 아름드리나무 숲에 자리 잡은 소록도병원이 보인다.

외부인 출입을 확인하는 곳을 지나 더 들어가면 100년 역사를 무색하게 하는 현대식 병원 본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에는 노인전문병동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병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올해 개관할 예정인 한센 역사자료 전시관이 바다를 등지고 세워져 있다.

노인전문병동과 전시관 사이 도로에는 섬 안내소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한센인 거주 지역이다.

한센병에 대해 무지했던 때에는 감염 예방과 격리를 위한 통제였지만, 지금은 그 안 마을에 사는 한센인을 보호하려는 조치다.

외부인 통제선을 넘어서면 100년 역사의 흔적을 곳곳에 간직한 섬의 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섬 안내소를 지나 도로 왼편에 검시실·감금실로 사용된 붉은 벽돌 건물 여러 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검시실의 두 칸 방에는 한센병 환자에게 자행됐던 인체해부 실습과 정관절개수술 기구들이 지금도 보존돼 있다.

육중한 담이 둘러쳐진 감금실은 변론의 기회를 박탈당한 수용자들이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만으로 징벌을 받았던 인권탄압의 상징물이다.

철창 달린 한 뼘 크기 쪽 창을 낸 감금실 내벽에는 '참회', '생명', '고향' 등 수용자들이 손으로 새긴 글씨의 흔적도 보였다.

<소록도 100년> ① '작은 사슴 섬'을 가다 - 3

전체면적 3.79㎢ 규모의 섬 곳곳에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군 막사를 닮은 수용시설의 옛터와 화장시설, 옛 교도소 건물도 남아있다.

섬은 다행히 한국전쟁의 포화를 피해 건물은 물론 섬에서 자생하는 자연생태계도 잘 보존돼 있다.

수목원을 방불케 하는 곧게 솟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섬 전체를 감싸 안으며 거센 바닷바람으로부터 섬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

다도해의 절경을 바라보는 길이 12㎞의 해안선에는 반세기 전만 해도 탈출에 실패한 거주인들의 주검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강력한 나환자 격리정책을 펼친 일제가 이곳에 집단수용시설을 세운 이유는 노젓는 배가 제자리를 맴돌만큼 강한 해류에 둘러싸인 입지 조건 때문이다.

덕분에 병원·학교·교회·창고 등 근대 일본 양식의 건물이 유지되고 있는 소록도는 이국적인 정취와 수용시설이라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공존했다.

지금은 문화재로 등록된 12곳의 옛 건물과 낡고 오래된 시설들은 550여명의 한센병 회복자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 생활공간과 구분돼 있다.

한센인들이 생활하는 곳은 평범한 시골 마을과 다를 바가 없다.

<소록도 100년> ① '작은 사슴 섬'을 가다 - 4

마을 길을 산책하고, 마당에 빨래를 내다 널고, 묵은 때가 낀 차량에 물을 끼얹는 소록도 주민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는 육지와 같다.

몸과 마음 어딘가에 남겼을 한센병의 깊은 상처는 언뜻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른게 있다면 아프면 찾을 수 있는 병원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과 마을을 찾아와 후유장애를 겪는 한센인들을 위해 애쓰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발한 활동 정도다.

하지만 이 두가지는 격리와 통제의 소록도가 치료와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곳에서 만난 한센인들은 자신과 이웃이 살아온 소록도의 슬픈 삶이 언젠가는 잊힐 것이라며 담담하게 얘기했다.

한 한센인은 "한센병 후유장애가 있는 지금의 소록도 노인은 대부분 80세로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일제의 만행과 해방 후까지 이어졌던 처참했던 소록도 이야기도 흐릿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분노도 원한도 무뎌져 간다. 남아있는 옛 건물만이 소록도의 지난 발자취와 원한 맺힌 사연을 간직할 것이다"며 100년동안 가슴에 맺혔던 한센인의 슬픔을 전했다.

"한센병 환자는 세 번 죽는다고 한다. 첫번째는 한센병을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부를 만큼 천시했던 세상과의 격리고, 두번째는 육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해부이며, 세번째는 죽어서도 그대로 묻히지 못하고 뜨거운 불길에서 한 줌 재가 되는 화장이다"

h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11 10: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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