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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풍진세상> 페르시아 부활 가능할까

<김종현의 풍진세상> 페르시아 부활 가능할까 - 2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논설위원 = 이란이 이슬람 혁명(1979년) 이후 처음으로 '좋은 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핵 개발 포기를 약속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린 이란이 통 큰 비즈니스로 왕성한 구매력을 자랑하자 세계 각국은 체면을 내던지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최근 유럽을 방문한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이탈리아에서 22조 원, 프랑스에서는 40조 원을 풀었다. 이탈리아는 로하니 대통령이 방문한 박물관의 누드 조각상을 모조리 흰색 패널로 차단해 돈에 팔려 문화대국이라는 나라의 자부심을 팽개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란은 페르시아 상인의 장사꾼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일거에 이미지 전환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14년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던 이란이 '약속의 땅'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란과 끈끈한 외교 안보 관계를 맺고 있던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외국 정상 중 먼저 이란을 방문해 가장 큰 수혜를 예약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일본의 아베 총리도 이란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이란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특수'에 밥숟가락을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란은 서방의 제재로 해외 금융기관에 묶여있던 120조 원(1천억 달러)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재정난으로 소홀했던 SOC 개선을 위해 올해에만 최소 240조 원(2천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다고 한다. 세계 경제는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 저유가, 국제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연초부터 휘청이고 있다. 이런 때 이란 특수는 글로벌 경제에 단비다.

이란이 차린 잔칫상에서 소외된 그룹도 있다. 미국과 영국은 초대를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종교혁명으로 쫓겨난 팔레비왕조의 배후였던데다 테러지원국 지정 등으로 지난 37년간 이란의 적이었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한다는 이유로 19세기 중반부터 이란을 사실상 식민지화한 원죄가 있다. 오늘날의 중동질서는 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영국 주도로 그려졌다.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 등 승전국들이 1차 세계대전 후 경계를 그어 만들었다. 이슬람 현지인의 입장에서가 아닌 승전국의 전략적 이해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국가와 통치자가 졸속으로 정해지다 보니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었다. 중동문제의 근본적 문제는 거기서 비롯됐다. 이란 입장에서는 자국의 현대사를 왜곡한 영국과 미국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후예라는 민족적 자부심이 강하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공통점은 있지만, 이란은 아리안계통으로 샘족인 인접 아랍국가들과 다르고, 언어도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를 쓴다. 고대 페르시아는 이집트에서 인도, 중앙아시아, 오늘날의 터키에 이르는 거대 제국을 건설했다. 7세기 이슬람에 정복당한 이후 1천 년간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민족적·문화적 일체성을 지켜냈다. 아랍 이슬람의 무력에 문화의 옷을 입힌 것은 페르시아였다. 옛 페르시아나 사파비왕조에 비하면 국토가 많이 쪼그라들었으나 이란의 면적은 한반도의 7.5배이고, 인구는 8천만 명이다. 인접한 이라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인구나 문화적 자산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원유매장량은 세계 4위, 가스매장량은 세계 2위다. 강국으로서의 바탕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이 페르시아의 영광을 되찾을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란은 보통국가가 아니라 종교혁명 이후 종교와 정치, 삶이 일체화된 이슬람공화국이다. 국가의 최정점에 아야톨라 하메네이라는 최고종교지도자가 있고, 그가 군 통수권과 대통령 인준·해임, 사법 수장과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임명권을 갖고 있다. 각종 법안은 헌법수호위원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법은 이슬람 율법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말만 공화국이지 왕의 자리를 종신의 최고종교지도자가 차지한 전제군주국, 그것도 자유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서구 시각에서 보면 여성 차별과 억압, 인권탄압이 제도화된 ‘나쁜 전제군주국’일 뿐이라고 혹평한다.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인 이란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느냐 여부는 이슬람 원리주의,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적대감, 수니파 아랍국가에 대한 대결 의지, 군사대국을 향한 욕구를 얼마나 탈색하고 억제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자존심을 접고 미국에 핵 포기를 약속한 것은 경제난에 따른 내부 불만을 추스르고 성장을 통한 부국강병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쇄국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페르시아의 상인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두바이나 사회주의 일당독재를 공고하게 유지하면서도 경제시스템은 자본주의를 도입한 중국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이란이 중동 내에서 정치·경제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좋든 싫든 개혁과 개방으로 나아가고, 보편적 인권을 중시하는 국제 질서와 규범을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경제도 중동의 다른 국가들처럼 석유에만 의존하는 형태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새로운 산업기반을 닦아야 한다. 다행히 이란은 교육열이 높고 과학기술에 대한 적응력도 남다르다고 한다. 페르시아 상인의 DNA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란 국민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앞서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기원전 330년)의 키루스 2세 대왕을 가장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루스 대왕은 개방과 관용, 절제의 표상이었다. 타 종교와 적에 관대했고, 법을 중시했다. 합리적인 경쟁과 보상체계로 국가와 군을 효율화했다. 이 때문에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와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가 ‘통치자의 거울’로 칭송했고,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는 CEO의 전범으로 꼽았다. 지도자들이 키루스의 리더십을 되살린다면 이란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kimj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02 11:1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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