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임형두의 축제세상> 입춘, 입춘첩, 입춘굿

송고시간2016-02-02 09:36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강력 한파 후 잠시 풀리는 듯하던 날씨가 전국을 다시 꽁꽁 얼어붙게 한다.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立春)이 코앞.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입춘에 장독 깨진다."

옛말 틀리는 게 하나 없다더니 '언즉시야'다 싶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동장군의 초조함인가, 아니면 애꿎은 미련인가. 달도 차면 기울고 해도 뜨면 져야 하듯이, 어차피 물러날 수밖에 없는 운명. 저만큼 시간의 길모퉁이에선 봄처녀가 살짝 고개를 내밀어 묘한 눈짓을 보낸다.

<임형두의 축제세상> 입춘, 입춘첩, 입춘굿 - 2

입춘은 한자어 그대로 새봄의 시작을 알리는 때. 24절기 중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이 바로 입춘이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들어 있는 절기로 태양력에 기초하기에 보통 2월 4일이 여기에 해당된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비결로는 시간의 '발명'도 있었다. 시작과 끝이 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시간은 칠흑의 어둠처럼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오기 마련. 하지만 시간에 대한 통제감과 예측성은 이를 잠재우고 안정감을 안겨준다.

태양력의 등장이 그 대표적인 예. 인간은 태양의 운행에 기초해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한 해는 12달로 구분했다. 절기도 마찬가지. 태양이 움직이는 길(황도·黃道)을 24등분해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절기 이름을 붙였다. 그 출발점이 입춘이고 종착점은 대한이다. 참고로, 봄의 시작이 입춘이듯이 여름과 가을·겨울의 초입은 각각 입하(立夏)·입추(立秋)·입동(立冬)이라고 한다.

뭇 생명은 온기와 빛에 힘입어 탄생하고 살아나간다. 그 근원에는 바로 태양이 있다. 겨울은 생각만 해도 몸이 저절로 움츠려들 만큼 춥다. 하지만 좀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면 봄을 잉태하는 생명의 시기이기도 하다. 겨울 없이는 봄도 없다.

<임형두의 축제세상> 입춘, 입춘첩, 입춘굿 - 3

입춘은 그 봄의 시작을 만방에 알리는 출발선이라고 하겠다.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과 흥분은 당연지사. 조상들은 벽사, 평안, 풍년, 초복, 경축, 장수 등의 기대와 소망을 입춘첩(立春帖)에 담아 대문이나 기둥, 천장 등에 정성껏 붙였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봄이 시작되니 운이 크게 따르고 밝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다)'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입춘첩들이다. 하지만 입춘첩은 춘축(春祝)·입춘서(立春書)·입춘방(立春榜)·춘방(春榜)이라는 명칭만큼이나 그 소망의 문구가 무척 다양했다.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라)'가 그렇고,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부모는 천 년을 장수하시고 자손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또한 그렇다.

조상들은 이 같은 입춘첩을 서로 나누며 새해의 길운을 기원했다. 일종의 긍정적 자기암시효과랄까. 아침저녁으로 안팎을 드나들며 바라보는 입춘첩의 문구는 알게 모르게 삶에 낙천성과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했다. '입춘첩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던 이유다.

입춘첩의 문구는 위에서 본 바처럼 대구(對句)만이 아니었다.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봄빛은 길한 사람 집에 먼저 온다)' 같은 단첩(單帖)도 많았다. 한국과 중국의 입춘첩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는 점 또한 참고할 만하다. 예컨대 우리가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입춘첩을 썼다면 중국에서는 붉은 종이에 검은 글씨가 일반적이었다.

<임형두의 축제세상> 입춘, 입춘첩, 입춘굿 - 4

입춘을 맞을 때마다 아쉬움으로 남는 건 근래 들어 그 축제성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한 해를 새로이 여는 절기이니만큼 조상들은 갖가지 의례로 대길(大吉)과 다경(多慶)을 기원했으나 근자에는 입춘첩만 붙이는 가정이 간혹 있을 뿐 절기로서의 기능은 대부분 잃어버렸다.

이런 추세를 감안할 때 매년 이맘때 열리는 제주의 '탐라국 입춘굿'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해마다 입춘 때가 되면 제주시의 제주목관아 앞마당에선 1만8천 신들이 찾아온 가운데 흥겨운 굿판이 벌어진다.

탐라국 입춘굿은 탐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전승문화축제로 왕을 비롯한 민·관·무(巫)가 하나돼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굿놀이였다. 일제시기인 1925년에 그 맥이 끊겼다가 74년 만인 1999년부터 문화관광축제로 부활·재현되고 있다.

입춘굿의 역사에서 보듯이 우리의 역사축제는 일제 강점기와 서구 문화유입, 현대 개발시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 가치와 역할에 다시 눈을 떠 최근들어 부활되고 있음은 천만다행이라고 하겠다. 올해 탐라국 입춘굿은 '모관(城內) 저자에 춘등을 내걸다'라는 주제로 3일과 4일 펼쳐진다.

오늘날의 입춘 축제로는 탐라국 입춘굿이 사실상 유일하다. 전통성과 향토성에 입각한 명실상부한 제의적 놀이마당. 입춘 절기의 본래 성격이 그렇듯 다른 생활 축제들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기차게 되살아나기를 기대해본다.

그나저나 이번 늦겨울 추위는 어떤 행로를 걷게 될까?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라는 옛말처럼 입춘 절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판 기세를 부릴까, '범이 불알을 동지에 얼구고 입춘에 녹인다'는 말처럼 한풀 꺾여 '꽃샘추위'만 겨우 남겨둔 채 본격적인 퇴각 준비에 나설까? 물론 대세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 남녘에선 벌써 매화 소식이 들려오고, 제주의 노리매 매화축제는 오는 6일 개막한다.

<임형두의 축제세상> 입춘, 입춘첩, 입춘굿 - 5

ido@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