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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원미동 참의사 김서영 "어르신들은 모두 엄마 아빠죠"

돈 없고 가족 없는 환자 극진히 돌보는 '동네 주치의'국민대통합위 '생활 속 작은 영웅'…"홀몸노인 마지막 길 배웅이 꿈"

(부천=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엄마 아빠 추운데 나오셨네요"

"어이구, 우리 딸 오늘도 왔네."

<사람들> 원미동 참의사 김서영 "어르신들은 모두 엄마 아빠죠" - 2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김서영 의원'의 김서영(55·여) 원장은 2일 시장통을 지나며 장사하는 '엄마 아빠'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김 원장은 이 동네에서 노인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친딸이자 '백의의 천사'다.

병원이 자리한 원미동은 양귀자 작가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이 된 곳으로 소시민과 저소득층 주민이 주를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원도심이다.

김 원장은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이 병원에서 주눅이 들지 않고 마음편히 진료받고 환자를 부모처럼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서 늘 노인 환자를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우리 동네에는 어렵고 힘들게 사는 분들이 비교적 많고 환자도 그런 분이 많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께 '엄마 아빠'라고 부르면 눈물을 흘리셔요. 그러면 저는 그냥 안아 드리지요."

김 원장은 어린이 환자에게는 "우리 아들, 우리 딸"이라고 부른다.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은 김 원장에게 아픈 곳 외에 집안 사정까지 이야기하며 속을 털어놓는다.

자식은 있는데 연락이 끓겨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받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엄마가 가출해 아빠가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초등생 등등….

가슴이 아프고 시린 사연을 품은 이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게 김 원장이 본 '원미동 사람들'이다.

환자 중에 자식없이 힘겹게 사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5년 전 한 할머니 환자를 엄마라고 불렀더니 깜짝 놀라고 이내 눈물을 흘리셨어요. 할머니는 '어머니'라고 불린 적은 있지만 '엄마'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저의 손을 꼭 잡고 계속 우셨어요"

"친엄마가 아니면 '엄마'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에 '엄마'라는 말을 처음 들으셨다고 했어요"

이후 김 원장과 그 할머니는 딸과 엄마가 됐고, 딸은 2013년 8월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다.

김 원장이 보호자로 돼 있어 동 주민자치센터 사람들과 함께 장례를 치렀다.

그는 법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에게 무료 치료가 불가능해 최소 비용으로 돌봐준다.

대신 명절이나 생일에 정성이 담긴 고기 한근, 옷 한번 등이 돌아온다.

김 원장이 혼자 힘으로 돕는데 한계가 있으면 동 주민자치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찾아준다.

이런 소식이 전해져 2013년 9월 동주민센터에서 '우리동네 주치의'로 위촉됐다.

늦은 밤이라도 홀로 사는 노인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오면 그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출동한다. 한순간 잘못으로 성병에 걸려 어쩔줄을 몰라하는 청소년 환자를 다독이고 기초 치료를 한 뒤 병원으로 안내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는 집에서 병원까지 25분 정도를 매일 걸어 다닌다. 택시를 탔다고 가정해 모은 돈으로 연말에 10여명의 엄마·아빠에게 전기장판을 사드리고 밀린 전화요금도 내줬다.

<사람들> 원미동 참의사 김서영 "어르신들은 모두 엄마 아빠죠" - 3

김 원장은 서울 연신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중반 우연히 한 움막에서 할머니와 손자 둘이 처참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고 했다.

버스표 살 돈과 도시락을 할머니에게 주고 왕복 2시간 가량을 걸어 다니기를 2개월가량 했을 때 움막이 철거됐고 할머니 가족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가 대학에서 신학과 유아교육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고, 졸업후 서울서 무료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1991년 공부도 더하고 봉사활동도 할 겸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남미 봉사를 자원했는데 목회자는 많은데 의사는 절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10년간 공부해 늦깎이 의사가 됐다.

볼리비아·파라과이·필리핀·티베트 등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다가 2009년 귀국해 현재의 원미동에서 자리 잡았다.

그는 어머니가 30년 전 시집갈 결혼자금을 주었는데 어렵고 힘들게 홀로 사는 노인들과 결혼하기로 하고 대신 남양주 조용한 곳에 땅을 샀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시설을 지어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일 김 원장을 포함해 24명을 '생활 속의 작은 영웅'으로 선정, 기념패를 수여했다.

기념패에는 '가장 아름답고 친근한 지역 주치의로 주민과 함께하고, 이웃과 의료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 시대 '작은 영웅''이라는 찬사가 쓰여 있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낮은 자세로 살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소원"이라며 김 원장은 이날도 '엄마 아빠'의 차디찬 손부터 어루만졌다.

changsu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02 10:3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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