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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단서는 발자국뿐"…춘천 택시기사 피살사건

"14년 전 그 날 춘천행 택시에 탄 마지막 손님이 범인이다"
"유일한 단서는 발자국뿐"…춘천 택시기사 피살사건 - 1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유일한 단서이자 증거물은 그때 그 택시에 남아 있던 그놈의 '발자국'뿐이다.

14년 전 그날 밤 경기 시흥에서 강원 춘천으로 운행한 그 택시의 마지막 손님은 누구였을까.

그 택시의 마지막 손님이 바로 발자국의 주인이자 택시기사를 살해한 범인이기 때문이다.

◇ 살인사건 담당 형사의 '회상'

꼭 14년 전인 2002년 2월 2일 오후 4시. 당시 경찰서 형사계 형사였던 나는 모처럼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함께 평온한 토요일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주5일 근무가 시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토요일은 오전까지 근무했다.

평온도 잠시뿐. 사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뭔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형사계 단체 호출은 언제나 그랬다. 역시 이번에도 예감은 적중했다.

살인 사건이었다. 아쉬워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춘천시 후평동 인적이 드문 주택가 뒷길인 Y 모텔 앞 공터에 외지 택시 1대가 있었다.

택시의 뒷좌석 왼쪽 유리창은 깨진 상태였다. 차 안에는 유리창을 깰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벽돌도 발견됐다.

유리 파편 사이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싸늘한 주검이 보였다.

피해자는 경기도 시흥시 S 택시업체 소속 운전기사 박모(당시 52세)씨였다.

박씨는 목이 졸리고 수차례 흉기에 찔린 상태였다.

당시 S 택시업체는 교대시간이 지나도록 박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택시업체 간의 연락망을 통해 박씨를 수소문했다.

"유일한 단서는 발자국뿐"…춘천 택시기사 피살사건 - 2

박씨의 택시를 가장 먼저 발견한 신고자(당시 52세) 역시 택시기사였다.

신고자는 "관내에 외지택시가 혹시 있는지 찾아달라는 연락을 받고서 살펴보니 모텔 주차장에 그 택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른바 '춘천 Y 모텔 앞 공터 택시기사 피살사건'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범행 시각은 전날인 1일 밤과 2일 새벽 사이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설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고, 택시에서 동전만 사라진 점으로 볼 때 2명 이상이 가담한 택시 강도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전 경찰력이 춘천에 연고를 두고서 경기 안산과 시흥 일대에 취업해 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층을 상대로 탐문에 나섰다.

무려 2천여 명이 용의 선상에 올랐다.

세 밑을 앞두고 이 사건을 비롯해 택시기사를 상대로 한 범행이 잇따르자 괴담까지 퍼졌다.

나와 동료 형사들은 설 연휴도 반납한 채 두 달여간 범인의 그림자를 미치듯이 쫓았다. 하지만, 윤곽조차 잡지 못했다.

이후 이 사건의 자체 수사본부는 해체되고 전담팀 체제로 전환됐다. 사건 기록은 철제 캐비닛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미제사건 담당 형사의 '독백'

강력 미제사건 담당 형사인 나의 책상에는 14년 전 '춘천 Y 모텔 앞 공터 택시기사 피살사건'의 기록이 놓여 있다.

장기 미제 강력사건이라는 것을 말해 주듯 사건 기록은 먼지만 가득했다.

지난해 9월 '태완이법' 시행으로 내년(2017년) 2월 완성되는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없어졌다.

범인을 잡으면 언제든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려면 추가 단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14년 전 선배 형사들의 기억을 반추하고 있다.

강원 춘천경찰서(연합뉴스 자료사진)
강원 춘천경찰서(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선배 형사들은 피해자 박씨의 택시 내부와 그 주변에 남아 있던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족적에 주목했다.

족적 문양으로 특정되는 상표의 운동화 구매 시기와 구매자 등을 자세히 조사한 듯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용의자를 특정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푼돈을 노린 택시강도의 우발적 범행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도 있었다.

목 졸림과 함께 6∼7차례 찔린 흉기 자국은 원한 관계에 의한 범행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었다.

선배 형사들은 숨진 박씨 택시의 운행기록장치(태코미터)까지 분석했다.

숨진 박씨의 택시가 어디서 정차했는지 등의 자세한 이동 경로를 파악해 사건 당일의 행적을 입체화하기 위해서였지만 명쾌한 단서는 찾지 못한 듯하다.

풀리지 않는 의문은 하나 더 있었다. 당시 깨진 차량 뒷좌석의 유리창 파편이 피해자의 주검 위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선배 형사들의 추측대로 범행을 저지른 범인들이 택시의 문을 내부에서 잠그고 현장을 급히 빠져 나가려다가 택시 안에 둔 자신들의 물건을 뒤늦게 발견하고 이를 꺼내려고 택시 출입문을 벽돌로 내리쳐 차 유리창을 깼던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이후 이 사건의 수사는 더는 나아가지 못한 채 미궁에 빠졌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단순 택시강도가 택시기사 박씨를 살해한 범인이었다면 지금쯤은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을 것이다.

반면 박씨와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었다면 범인은 60대를 훌쩍 넘긴 노인일 수도 있다.

이제 내 앞에 남은 것은 먼지 쌓인 사건 기록과 범인의 '발자국'뿐이다.

나는 이 유일한 단서를 토대로 피살된 박씨가 자신의 택시에 마지막으로 태운 손님을 찾아야 한다.

<※이 기사는 해당 사건 수사를 담당한 과거와 현재 형사의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 전개 형식으로 소개한 기사입니다.>

jle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02 07:0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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