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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하굿둑 조성 30년> 사라진 생태 ① 재첩


<낙동강하굿둑 조성 30년> 사라진 생태 ① 재첩

사상구 재첩거리 상인 모습
사상구 재첩거리 상인 모습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1980년대 낙동강 하굿둑이 만들어 지기전 재첩이 지천으로 있던 낙동강 유역에서 재첩국 장사를 시작해 2대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할매재첩'. 할매재첩의 권영희씨가 뜨끈뜨끈한 재첩국을 뜨고 있다.. 2016.2.4
ready@yna.co.kr

'재첩국 사이오!' 부산의 새벽을 열던 재첩, 하굿둑 조성 최대 피해자
지금은 명맥만 유지…"물길 트면 몇년 내 복원 가능"

<※편집자주 = 1987년 낙동강 하굿둑 조성으로 민물과 바닷물의 교류가 끊긴 지 올해로 30년을 맞습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낙동강의 기수(汽水)지역은 생태계의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바다와 강이 단절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낙동강 재첩을 비롯해 수많은 기수역 어자원과 철새들이 자취를 감추거나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최근 서병수 부산시장이 낙동강 하굿둑을 완전 개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기수역 생태 복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라져간 낙동강 기수지역의 대표적인 어자원 등 사라진 생태를 찾아가는 탐방 시리즈를 7차례 송고합니다.>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차근호 기자 = "발길에 밟히는 게 재첩이었어요. 발가락으로 꾹 집어 올리기도 하고, 얕은 물에서는 발을 한번 휘저으면 재첩이 새까맣게 드러났어요."

부산 사상구 모라동 재첩 거리에서 '할매재첩'을 운영하는 권영희(70·여) 씨의 말이다.

그는 이곳에서 2대째 재첩국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 이 거리에는 낙동강에서 나는 재첩으로 재첩국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10여 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3∼4곳만 명맥을 잇고 있다.

<낙동강하굿둑 조성 30년> 사라진 생태 ① 재첩 - 2

지금 이곳 식당에서 쓰는 재첩은 낙동강 재첩이 아니라 대부분 섬진강에서 가져온 재첩이거나 종패를 뿌려 키운 양식 재첩이다.

낙동강 하굿둑이 만들어진 이후 낙동강 자연산 재첩은 거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사상구 재첩거리 상인 모습
사상구 재첩거리 상인 모습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1980년대 낙동강 하굿둑이 만들어 지기전 재첩이 지천으로 있던 낙동강 유역에서 재첩국 장사를 시작해 2대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할매재첩'. 할매재첩의 권영희씨가 뜨끈뜨끈한 재첩국을 뜨고 있다.. 2016.2.4
ready@yna.co.kr

낙동강 하굿둑은 1987년 부산 사하구와 강서구를 잇는 길이 2천260m, 높이 18.7m, 10개 수문과 1개 갑문으로 만들어졌다.

1천573억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됐다. 낙동강으로 올라오는 염분을 막아 김해평야에 안정적인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마시는 물의 86%를 낙동강에 의존하는 부산 시민의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목적으로 조성됐다.

<낙동강하굿둑 조성 30년> 사라진 생태 ① 재첩 - 3

낙동강 어귀 구포에서 토박이로 살아온 김한배(66)씨는 "어린 시절 구포나루터에 재첩배가 1㎞가량 일렬로 빼곡히 정박해 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낙동강 구포교 아래 둔치에는 재첩 껍데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친구들과 강가에서 놀다가 재첩 한 바구니를 잡아 집에 들고가면 "쓸데없는 것을 왜 잡아왔느냐"고 타박할 정도였다.

그만큼 재첩이 많이 잡혔고,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그러던 것이 하굿둑 조성 후 불과 2∼3년 사이에 재첩 배를 거의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이 그의 기억이다.

민물과 바닷물의 소통이 끊기자 기수지역 물속은 이곳 생물들에게 말그대로 생지옥으로 변했다.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은 재첩이었다.

김경철 '습지와 새들의 친구' 생태보전 국장은 "수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패류"라며 "민물과 바닷물 속 갯벌에서 영양염류를 빨아먹는 재첩의 경우 물길이 바뀌면 곧바로 폐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둑 조성 후 몇 년 안에 낙동강 하류는 재첩의 무덤으로 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낙동강 재첩은 캐는 족족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됐다.

정확한 통계 자료가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부산지역 경제활성화에 적지 않은 이바지를 했다.

낙동강 재첩은 다른 지역의 재첩과는 모양부터 사뭇 다르다.

재첩
재첩재첩

(부산=연합뉴스) 부산 사상구 재첩거리에 있는 재첩국집에서 촬영한 재첩 모습. 2016.2.4
ready@yna.co.kr

우선 크기에서 섬진강 등 다른 지역의 재첩은 자잘하지만, 낙동강 재첩은 엄지손가락 손톱만큼이나 큼직하다.

강과 바다가 끊긴 지 30년. 낙동강 재첩잡이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을까.

1월 중순 하굿둑 아래 부산 강서구 명지동 일대를 취재진이 찾았을 때 얕은 물에서 사람 2명이 한 조를 이뤄 재첩잡이 어구로 강바닥을 긁는 모습이 보였다.

대나무 쪽을 꽂아 자신의 어장임을 표시해 둔 곳도 눈에 띄었다. 섬진강에서 가져온 재첩 종자를 뿌려서 양식을 하는 곳이라고 주민들이 귀띔했다.

<낙동강하굿둑 조성 30년> 사라진 생태 ① 재첩 - 4

자연산 채첩은 여름과 가을에 서낙동강 지역 녹산수문 인근 노적봉, 송정동 앞바다, 신호대교 일대 갯벌에서 아직도 볼 수 있지만 양이 많지 않아 채취해 팔 정도는 아니다.

강서구 송정동에 사는 한 주민은 "지금도 호미로 모래 아래를 살살 긁어 보면 재첩이 걸려서 나온다"며 "내다 팔 만큼은 안 되고 집에서 먹을 만큼은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침이면 재첩국을 파는 아지매의 '재첩국 사이오'가 골목골목 울리던 부산.

부산의 새벽을 열었던 이 목소리는 둑 조성 이후 일시에 사라졌다. 그로부터 30년 지난 지금 낙동강 하류는 물 흐름이 멈춘 채 죽음의 강이 되고 있다.

주기재 부산대생명공학과 교수는 "재첩은 단순한 기수역 어자원에 앞서 사회문화적으로 부산에 큰 상징성을 갖고 있다"며 "둑이 열리면 재첩도 살아나겠지만 부산이 생태도시란 글로벌 이미지를 가지면서 생태관광 등 어마어마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ready@yna.co.kr

ljm703@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2/02 06:5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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