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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폐증부터 석면암까지…'산업화의 역습' 직업병(종합)

급속한 산업화로 각종 중독·암 발병…"예방의식과 실천만이 직업병 막아"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12일 삼성전자와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재해예방대책' 최종 합의서에 서명했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 여성노동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후 8년10개월간 끌어온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의 합의는 국내 산업의 어두운 이면인 '직업병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진폐증부터 석면암까지…'산업화의 역습' 직업병(종합) - 2

국내에서 직업병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1980년대 들어서였다. 1970년대 급속하게 추진한 산업화 시절에 지어진 각종 공장이나 작업장은 제대로 된 오염방지시설을 갖추지 못했고, 그 후유증이 1980년대부터 점차 드러났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직업병이 인정된 사례는 1988년 '상봉동 진폐증 소송' 사건이었다.

1979년부터 강원산업의 삼표연탄 망우공장 근처에 살던 박길래씨가 심한 기침과 통증, 피곤 증세를 느낀 것은 1982년이었다. 병원에서 폐결핵 2기라는 진단을 받았고, 1986년 국립의료원에서 폐 조직 검사를 받은 결과 진폐증으로 확인됐다.

1988년 초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적극 나서 소송을 진행했다. 연탄공장 주변 주민에 대한 역학조사까지 벌인 결과 공장 주변으로 유출된 탄가루의 폐해가 드러났다. 법원은 이듬해 '강원산업은 손해배상금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박씨의 치료비와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박씨는 쪽방과 병원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하다 2000년 4월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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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터져 나온 원진레이온 사건은 국내 최대의 직업병 사건이었다. 직업병을 인정받은 근로자가 무려 913명에 달하며, 지금껏 숨진 노동자만 200명에 육박한다.

경기도 미금시 도농동에 세워진 원진레이온에서는 1966년부터 1991년까지 인조견사인 레이온을 생산했다. 전기료를 아낀다는 이유로 환기창을 꺼놓은 채 개인 안전장비도 없이 일하던 노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황화탄소에 중독됐다.

두통, 구토, 불면증, 부종 등 각종 증세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결국 1980년대 들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다. 군사독재 시절에 쉬쉬했던 문제는 1987년 민주화 투쟁 직후인 1988년부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회사 측은 직업병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 4명에게 600만원을 주며 이를 무마하려고 했지만, 피해자들은 '원진 직업병 피해자·가족협의회'를 만들어 맞섰다. 힘든 싸움 끝에 원진 직업병 관리재단이 만들어졌고, 2003년에는 직업병 전문병원도 세워졌다.

1994년에는 석면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사례가 처음 나왔다.

부산지역의 석면 방직공장인 제일화학에서 일하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석면암의 일종인 악성중피종에 걸렸고, 사망 직후 산재로 인정받았다. 이는 국내에서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이기도 하다. 석면 가루가 온 공장에 눈처럼 쌓였지만 안전장비라고는 마스크 하나가 고작이었던 작업환경이 빚은 결과였다.

1994년 이후 20여년 간 폐암, 악성중피종, 석면폐증 등 각종 석면 질환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건수는 200여건에 달한다.

2007년에는 제일화학 전직 노동자였던 고(故) 원점순씨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약 2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이후 비슷한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규모 직업병 인정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국내 기업들이 점차 환경 의식을 갖게 돼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개선과 산재 예방시설에 투자를 늘린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직업병의 인정 범위가 넓어지고 피해자들이 적극적인 자기 구제에 나서면서 직업성 암 인정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직업성 암 승인건수는 2012년 54건에서 2013년 66건, 2014년 76건으로 증가했다.

근로복지공단 요양부의 김찬영 차장은 "1960∼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 시기는 직업병에 대한 의식조차 별로 없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며 "1980년대 이후 작업환경 개선과 근로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업병에 대한 의식도 고조됐다"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직업병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업주들이 의식을 가지고 작업환경 개선과 오염 방지시설 설치 등에 투자해야 한다"며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직업병 발생건수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1/13 22:2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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