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20년…총체적 위기 맞아 '환골탈태' 목소리
송고시간2015-12-09 12:17
조직력 점차 약해져…임금근로자의 3%, 전체 조합원의 33%강경 일변도 투쟁에 국민 외면…한상균 위원장도 강경파전문가들 "노사정 참여 등 시대 변화 맞춘 협상전략 필요"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창립 20년을 맞은 민주노총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과 대규모 충돌을 야기한 후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조계사에 은신 중이다. 조계종 신도 일부가 한 위원장의 조계사 퇴거를 요구하는 등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민노총 지도부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민노총의 조직적 기반도 약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정부 투쟁 일변도의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민노총 안팎에서 들린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1995년 선명성 내세우며 창립…2000년대 전성기後 조직력↓
흔히 민노총으로 불리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1995년 11월 41만8천여명의 조합원으로 창립됐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창설된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한국노총을 '어용노조'로 규정했다. 그만큼 선명성을 내세웠다는 얘기다.
1996년 연인원 400만명이 넘는 총파업을 주도하며 세력을 과시했다. 정리해고 법제화 등을 여당의 노동법 개정안이 날치기로 통과되자 총파업으로 맞섰고, 결국 여당은 1997년 2월 노동법을 재개정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외환위기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시련을 겪었지만, 조직을 꾸준히 확대하며 세를 불렸다. 2006년은 민노총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해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민노총에 가입했고, 완성차 4개 사는 산별노조 전환에 성공해 금속노조를 출범시켰다. 운수노조, 공공노조 등 다른 산별노조의 결성도 잇따랐다.
하지만,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조직률이 점차 떨어지고 민노총에서 탈퇴하는 노조마저 잇따랐다. 2009년에는 공공운수연맹 소속 단위노조와 KT노조 등이 민노총을 이탈했다.
그 결과 지난해 전체 노동조합원 190만5천명(고용노동부 집계 기준) 중 민노총 조합원은 63만1천명으로 33.1%를 차지한다. 이는 10년 전인 2004년 43.5%에서 크게 떨어진 수치다. 전체 임금 근로자 1천931만명을 기준으로 보면 3% 정도에 불과하다.
한노총 조합원의 비중이 같은 기간 50.7%에서 62.2%로 높아진 것에 비춰보면 그 하락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민노총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민노총이 점차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민노총 안팎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일 것"이라며 "국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의 감소, 민노총의 투쟁 일변도 노선에 대한 외면 등 여러 원인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 투쟁 일변도 전략 일관…한상균 위원장도 강경파 출신
민노총의 특징은 대정부 투쟁 위주의 전략을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민노총의 조직적 기반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민노총 산하 산별노조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다. 자동차, 중공업 노조가 주축이 된 금속노조는 15만명, 철도노조 등 공공기관 노조가 중심인 공공운수노조도 15만명의 조합원 수를 자랑한다.
여기에 전공노 8만명, 전교조 5만명 등을 합치면 43만명에 달해 전체 민노총 조합원 수 63만명(민노총 자체 집계 69만명)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4대 산별노조가 민노총의 주축을 이루는 셈이다.
그 결과 민노총은 1999년 공기업 및 대기업 구조조정에 반발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후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다. 2005년 당시 지도부가 노사정 대화 복귀를 논의하려 했지만, 강경파가 폭력을 행사하며 저지해 결국 논의가 무산됐다.
민노총은 올해도 노사정 대타협에 합의한 한노총을 비난하며 '노동개악 저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9·15 노사정 대타협은 정부와 여당의 '노동개악'에 힘을 실어주는 야합에 불과하다는 것이 민노총의 시각이다.
더구나, 한상균 현 민노총 위원장도 강경파 출신이다.
민노총 내 좌파 계열인 노동전선 소속인 한 후보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시절 주도한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이유로 2009년부터 3년간 구속됐다. 출소 후에는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며 171일간의 송전탑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4월 24일 1차 총파업, 7월 15일 2차 총파업 집회,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등 올해 민노총이 총파업과 대규모 집회 위주의 노선으로 일관한 것도 이러한 조직적 기반과 위원장의 성향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 "투쟁만으론 국민 호응 못 얻어"…노사정 참여 등 대안 모색해야
민노총의 투쟁 일변도 전략은 선명성 부각이라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일 수 있지만, 조직의 장기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계종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경찰은 조계사에 공권력을 투입해 한상균 위원장을 검거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 위원장이 검거될 경우 민노총 지도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차기 지도부가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기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강(强)대 강'으로 맞붙을 경우 공권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민노총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전문가들은 민노총이 전향적인 자세로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전략 변경을 추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예전에는 강경 투쟁이 군부독재나 대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으로 비쳤지만,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한국 경제가 난국에 처한 지금은 '대안 없는 투쟁', '반대만을 위한 반대'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권혁 부산대 교수는 "대안을 제시하는 조직, 투쟁과 협상을 병행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줘야만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노사정 대화 참여 등 여러 대안을 전향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사정 참여에 대한 요구는 민노총과 함께 양대 노동조직인 한노총에서도 흘러나온다.
한노총의 한 간부는 "만약 민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참여했다면 노사정 대화 과정에서 노동계의 목소리를 훨씬 키웠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와 경영계가 힘을 합쳐 공세를 펴는 상황에서 민노총의 부재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민노총은 대기업 정규직 위주에서 벗어나 중소기업, 하청기업, 비정규직 등 여러 목소리를 아우르는 조직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며 "노사정 대화에 대해서도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참여 여부의 타당성을 국민에게 설득시키는 등 '설득 지향', '대화 지향'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ss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12/09 12:1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