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교수의 '더불어숲' 새롭게 다시 출간
송고시간2015-12-09 09:41
강자 지배에서 벗어날 '새로운 인간주의' 제시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1998년 처음 출간돼 화제를 모았던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저서 '더불어숲'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왔다.
이번 개정판은 출판사가 바뀌면서 형식과 내용에서 더욱 일신했다. 초판 출간 때 두 권으로 나뉘어 나왔다가 2003년에 한 권의 합본호로 선보였던 이 책은 이번 개정본에서 표지와 본문 디자인들에서 한결 새로워졌다.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내용도 일부 바뀌었다. 특히 어느 누구도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선진 자본이 머리가 되고, 중진 자본이 몸이 되고, 그보다 못한 후진 자본이 발이 되는 구조를 차갑게 짚어낸다. 세계 체제와 불평등 분업의 상호침투라는 이중 구조를 직시하는 것.
신 교수는 편지 형식의 이 글을 쓰기 위해 1997년 한 해 동안 세계 22개국을 두루 여행했다.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를 품에 안고서 동서고금의 세상을 찬찬히 탐방한 것. 이 글들은 그해에 한 일간지에 연재됐다.
신 교수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향해 출항했던 스페인의 우엘바를 시작으로 유럽과 남미를 거쳐 중국의 태산에서 여정을 마쳤다. 로마, 베이징, 모스크바, 아테네, 이스탄불 등의 인류 발자취를 더듬으며 우리가 외면하기 쉬운 감각과 기억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인류 역사는 강자 논리로 점철돼왔다. 그 바탕에 있는 수많은 생명의 희생과 피땀은 평가절하되거나 도외시되곤 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그것을 쌓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 이 책이 스테디셀러로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흘러간 과거는 물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함께 담았다. 그러면서 한숨처럼 쓸쓸함을 표현한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인류의 긴 여정을 볼 때 근본에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고. 그래서 과거 청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완고한 현실의 구조를 허물자고 역설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쌓아온 '생각의 성(城)'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그 성을 허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여행의 두 의미인 떠남과 만남은 자기의 성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자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이라는 얘기.
신 교수가 넓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자본주의의 오만과 무지, 그리고 반인간주의를 확인했다. 매일 충족하고 싶어하는 '무한한 허영의 욕망'에 붙잡혀 어느 누구도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계화' 미명 아래 화(和)가 아닌 동(同)의 논리로 강요되는 강자의 지배 논리는 비단 정치·경제적 지배력을 장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과거 유적의 미학까지 재구성함으로써 사람들의 심성마저 획일화하더라는 것. 안타깝게도 역사는 강자의 논리와 이익에 따라 이렇듯 왜곡되곤 했다.
다음은 강자의 지배 논리에서 벗어나 지금의 어려운 시대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한 '새로운 인간주의'다.
"새로운 인간주의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궁핍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쌓아놓은 자본으로부터, 그리고 무한한 허영의 욕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계화는 인간의 논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입니다. 더불어 손잡고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진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책의 제목은 인간과 사회를 나무와 숲으로 비유한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나무는 저마다의 발밑에서 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 그러한 나무들이 더불어 우람한 역사의 숲을 만든다"고 역설한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저자는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출소해 이듬해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해왔다. 저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등.
돌베개. 388쪽. 1만6천원.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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