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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서정시를 연극으로 풀어낸다면…'셰익스피어 소네트'

송고시간2015-10-18 17:31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셰익스피어의 14행짜리 고전 시(소네트)를 21세기 무대에 올린다면 과연 어떤 장면이 연출될까.

지난 16일 저녁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연극이었다.

세계적인 포스트드라마 연출가 로버트 윌슨이 '서사극의 아버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연극배우인 아내와 함께 설립한 '베를린 앙상블'과 함께 선보인 이 무대는 셰익스피어의 시를 현대적 이미지와 음악을 활용해 풀어낸 것이다.

독일 최고 수준의 배우들이 모인 것으로도 유명한 베를린 앙상블의 내한 공연은 1949년 창단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내한공연은 지난 2일 시작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배우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셰익스피어, 큐피드, 어릿광대, 다크레이디 등 마치 중세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로 분해 마치 추리고 추려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무대 위에서 따로 또 같이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읽어내려갔다.

이 무대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154편의 소네트 중 짝사랑의 고통, 인간의 필멸, 시의 영원성을 토로하는 25편만으로 만들어졌으며 소네트의 주제가 서로 다른 것처럼 무대와 무대 사이에선 등장인물 외에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기 어렵다.

각각의 무대는 배우들이 낭송하는 시를 이미지화해 보여줘 마치 해당 소네트에 삽화를 넣는다면 이런 그림이 들어가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공연리뷰> 서정시를 연극으로 풀어낸다면…'셰익스피어 소네트' - 2

16세기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무대에는 파손된 차량이나 주유소 계기판 같은 현대적인 소품들도 '오브제'처럼 등장한다.

무대는 최소한의 소품만으로 텅 빈 듯이 연출됐다. 나머지는 윌슨의 특기인 조명으로 메웠다. 빛과 어둠의 적절한 배치와 최소한의 색을 사용하면서도 농도를 달리하는 조명 연출은 무대에 입체성을 더했다.

여기에 음악이 더해지며 연극을 완성시켰다. 자연소리가 들리다가도 곧 록음악이 쏟아지고 또다시 바로크와 재즈를 오가는 화려한 연주는 '물랭루주', '슈렉', '아이 엠 샘' 등으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낯설고 기묘한 이 무대는 '브레히트의 후예'로 불리는 윌슨의 브레히트에 대한 현대적인 오마주에 가까웠다.

이런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인물과 배경, 음악은 독특하게도 공감각적인 조화를 이루며 무대의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셰익스피어가 소네트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을 윌슨이 무대에서 이미지로 구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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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부조화의 조화를 이끌어낸 가장 큰 비결은 연기자들의 탁월한 연기 덕분이었다. 남성 배우가 여성 역할을, 여성 배우는 남성 역할을 교차로 맡아 연기했음에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던 것도 이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기인한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한 유르겐 홀츠(83)와 셰익스피어를 맡은 앙겔라 슈미트(79)는 마치 당대 인물이 살아나온 것 같은 연기로 공력을 드러냈다.

각각의 무대는 완전히 독립된 듯 보이지만 사실 서로 유기적 관계가 있다고 윌슨은 공연 후 열린 연출가와의 대화에서 설명했다.

윌슨은 "1부의 7편과 2부 7편이 서로 거울에서 마주 보듯 반대로 설계했다. 1부의 첫 무대가 밝은 느낌이라면 2부의 첫 무대는 어두운 느낌으로 구현하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음악에도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막이 오르기 전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언급하며 "귀뚜라미의 수명이 21일인데 인간의 평균 수명인 70년에 맞춰 귀뚜라미 소리를 느리게 재생하면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들린다고 한다. 반대로 인간의 소리를 귀뚜라미 수명에 맞춰 빠르게 돌리면 어떤 소리가 날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공연은 15일부터 17일까지 단 3차례만 열렸다. 온라인에선 웃돈을 주고라도 표를 사겠다는 글이 쇄도했다.

공연이 끝난 후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관객들 사이에선 "도대체 뭐지"라는 반응도 상당히 나와 높은 예술성만큼이나 난이도도 높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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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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