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김일성, 김정일 후계자로 공식 지명
송고시간2015-10-20 05:00
(서울=연합뉴스) 1980년 10월 20일은 북한 김정일(1942-2011)이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임을 대내외에 공식으로 천명한 날이다. 북한 조선노동당 6차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돼 절대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김일성에게서 물려받은 권력을 17년 간 휘두른 뒤 아들 김정은(32)에게 물려줬다.이로써 '3대 부자세습체제'의 허리 역할을 했다.
1974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오르면서 이미 사실상 후계자로 확정돼 '당 중앙'으로 불렸다. 1980년 10월20일 이후 후계작업이 공개적이고 본격적으로 진행돼 1981년부터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로 불렸다. 7세 때 생모를 여의고서 1960년대 초 노동당 내 '반종파투쟁'에 앞장섰다. 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 등과 연결된 인물은 모두 외국으로 추방함으로써 후계기반을 다졌다.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김정일 시대'가 본격화했지만 내부 상황은 최악이었다.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이름붙인 이 시기에 국가경제와 식량배급제는 완전히 붕괴돼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생겼다. 당국의 통제 기능은 사실상 마비 수준이었다.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별도로 일본·미국 등에도 유화 제스처를 취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핵실험에 몰두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취한 탓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시사 주간 타임은 2011년 김정일을 세계 10대 독재자 가운데 3번째로 거론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고발했다. "김정일이 이끄는 독재정권은 고문, 공개처형, 강제노동 등으로 비난받고 있으며 특히 약 20여만 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한 것이다.
영국 일간 타임스도 2008년 그를 10대 부패 독재자 가운데 첫 번째로 지목했다. 17개 궁전과 승용차 수백대를 보유했고, 헤네시 VOSP 코냑 구입에 연간 65만달러를 쓰면서 젊은 여성으로 구성된 '기쁨조(Pleasure Brigade)'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소식도 전했다.
건강이상설이 끊임없이 나돌던 김정일은 뇌졸중이 발병한 이듬해인 2009년 별다른 준비없이 김정은을 갑자기 후계자로 내정한 뒤 2011년 12월 17일 현지 지도방문차 탑승한 열차에서 사망했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10/20 05: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