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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구섭 이산가족協 대표 "남북 공용엽서 있었으면…"

송고시간2015-08-25 17:07

"한국전쟁 전엔 편지 왕래 자유로웠다…왕래에 체제는 문제 안 돼"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만나지 못해도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검열 때문에 편지가 어렵다면 엽서라도 괜찮습니다. 남북한이 같이 공용 관제엽서라도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심구섭(81) 남북이산가족협회 대표는 남북한 고위급 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포함된 남북합의문이 발표된 것과 관련, 상봉 행사를 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생사확인과 서신왕래 등이 병행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심 대표는 서울 을지로 협회 사무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상봉 행사를 북한과 타결한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라면서 "그러나 종래와 같이 한 번에 100명씩 만난다면 1년 열두 달 매달 만난다고 해도 1천200명밖에 만나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는 "한 번에 100명씩 상봉하는 것은 상징적 숫자를 이용한 일종의 전시성 행사"라면서 "이산가족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80세 이상 상봉 희망자가 남쪽에만 6만 5천명이 있는데 지금처럼 해서는 극소수만 상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모가 자식을 보고 가족끼리 서로 만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천부적인 권리'인데 현재로서는 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산가족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이산가족 1세대는 고령이기 때문에 시급히 남북 간 생사확인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심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경험상 북한에서도 시골에 거주하는 사람일수록 이동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산가족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면서 "남북한이 합의해서 이산가족을 찾아준다면 6만 5천명 중 상당수의 생사확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 대표는 이어 대규모 상봉이 어렵다면 편지나 엽서를 통해서라도 소식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 자신도 이산가족인 심 대표는 한국전쟁 전 38선으로 남북이 갈려 있을 때도 개성에서 검열을 거치기는 했지만 편지 왕래는 자유로웠다고 회상했다.

전쟁 직전인 1950년 5월16일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나중에 동생을 만날 수 있게 돼 물어보니 그 편지를 마지막으로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단 남북한이 엽서로 왕래를 시작하면 이후 편지는 물론이고 생필품이나 약 등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의 가족들에게 보내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심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남북한 소식 왕래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 당국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인도적 문제를 해결해주느냐"라며 "체제는 별로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1947년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있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어머니·동생들과 생이별을 했다.

그는 방법을 수소문한 끝에 1994년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에서 동생을 만날 수 있었지만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끝까지 한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내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면서 "마음의 짐이라도 덜고자 북한의 어머니 묘에 비석을 세워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나는 다른 이산가족들에 비하면 선택받은 소수"라면서 "대다수는 생사확인이라도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며 이산가족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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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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