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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대모' 임희숙 "가수는 날마다 노래하는게 로망이죠"

송고시간2015-08-11 09:18

굴곡진 반세기 노래 인생…신곡 '어떻게 좀 해봐' 발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경로 우대가 시작된 걸요. 하하하."

한국전쟁이 발발한 나흘 뒤인 1950년 6월 29일 태어난 '솔(Soul) 음악의 대모' 임희숙. 올해로 65세가 된 그는 젊어 보인다는 인사에 "제가 오늘 화장을 좀 잘했나 봐요"라며 특유의 화통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데뷔 49주년을 맞은 그는 지난 5일 신곡 '어떻게 좀 해봐'를 내고 의욕적으로 팬들 앞에 섰다.

지난 2001년 35주년 재즈 앨범을 낸 뒤 몇 장의 음반을 냈지만 제대로 된 가요 신곡은 15년가량 된 것 같다고 더듬었다.

최근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만난 그는 "왜 이렇게 뜸했느냐"는 물음에 "간간이 방송을 했을 뿐, 노래를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가수는 날마다 노래하고 싶죠. 힘이 들어도 그게 로망이고 꿈이에요. 노래할 무대가 줄어들면서 6년 전에 이태원에 라이브 카페를 차려 이곳에서 날마다 노래를 해요. 무대에 오를 때면 지금도 긴장 되고요. 다행히 히트곡을 팬들이 외면하지 않아 행복한 가수죠."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히트곡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진정 난 몰랐네' 등 노래 제목이 나올 때마다 몇 소절씩 라이브로 들려줬다. '국보급' 중저음과 허스키한 음색, 큰 포물선을 그리는 바이브레이션은 여전히 콧등을 시큰하게 했다.

자신의 지난 인생과 부모님 얘기를 할 때는 "오늘 왜 이러냐"고 혼잣말하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의 행방불명과 두 번의 이혼, 억울하게 휘말린 대마초 파동과 방송 중단, 음독자살 기도에 이어 몇 년 전 척추 수술까지 그는 한 마디로 팔자가 '셌다'.

반세기 동안 노래하며 몇 겹의 딱지가 앉았는지 그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휴대 전화에 담아둔 부모님 사진을 보며 절로 미소 지었고, 장시간 인터뷰가 끝나고는 "가슴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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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진아가 헌정한 음반…"예전 곡도 오리지널 키로 불러"

음반을 내는데 도움을 준 건 후배 가수 태진아였다.

윤시내, 최백호, 이동원의 히트곡을 쓴 작곡가 최종혁으로부터 '어떻게 좀 해봐'란 노래를 선물 받은 임희숙은 태진아를 찾아가 상의했다. 태진아는 "누님, 제가 싱글음반 하나 헌정할게요"라며 힘을 실어줬다.

임희숙은 "진아가 데뷔 음반 녹음할 때도 놀러 가고 수십 년 지기"라며 "윤항기 씨에 이어 내 음반까지 내줘 휴머니즘이 있는 후배"라고 치켜세웠다.

그간 솔과 재즈, 가스펠부터 트로트까지 흑인 감성의 음악과 가요를 넘나든 그의 신곡 '어떻게 좀 해봐'는 솔에 '뽕끼'를 가미한 솔 트로트곡이다.

가사에는 '어떻게 좀 해봐 비뚤어진 지금 흔들리는 세상…씨 뿌리고 가꾼 만큼 잘사는 그런 세상 만들어봐' 등 힘을 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겼다.

"제가 트로트를 부른 건 1970년대 '잊었을거예요'가 처음으로 1980년대에도 트로트 록 '상처'를 선보였죠. 전 트로트를 좋아해요. 제 슬픈 노래가 따라부르기 어렵다던데 신곡은 저도 녹음실서 연습 한 번에 녹음할 정도로 대중적이고 희망적이죠. 마술사 복장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이 아이디어도 진아가 냈어요."

그는 여전히 예전 곡들도 '오리지널 키'로 부른다. 고음에선 되레 청아한 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중저음에선 온몸을 울리는 풍성한 성량이 퍼져 나와 '절창'을 이룬다.

9년 전쯤 호주 공연을 갔다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친 그는 결국 2011년 척추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며 "그때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고 고음만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리는 때론 발바닥에서 때론 아랫배에서 온몸을 통해 나오므로 가수의 살아온 인생, 건강 상태까지 가늠할 수 있다며 "한의 소리가 나오려면 예술가는 때론 가난해야 한다"고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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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무게'에 눌린 인생…"노래는 소리로 세상에 내놓은 자식"

태어난 순간부터 임희숙의 앞날에는 고생문이 열려 있었다. 출생 얼마 뒤 대한청년단 소속이던 아버지가 납치돼 생사를 알 길이 없었고, 3살 위 언니는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었다. 어머니는 재가해 두 남동생을 낳았는데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로 유명한 이민용 감독이 그중 한 명이다.

아버지의 젊은 날 흑백 사진을 보여준 그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내 옆 얼굴이 딱 아버지를 닮았다"며 "악기를 5개나 다루셨다고 한다. 그래도 노래 재능은 엄마를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수의 길을 반대해 딸의 머리카락까지 자른 어머니는 고집을 꺾지 못하고 '목포의 눈물'을 작곡한 손목인 선생에게 딸을 데리고 갔다. "'솔의 대부' 샘 쿡을 통해 솔 음악의 진정성을 깨달았고 나애심, 최희준은 나의 롤 모델이었다"고 한다.

그는 1966년 고 2때 손목인이 작곡한 '외로운 산장'을 옴니버스 판에 녹음하며 데뷔했다. 같은 해 다른 판에선 손석우의 '석양은 불타는데'를 불렀고 그해 12월에는 워커힐 무대에 올랐다. TBC(동양방송) '쇼쇼쇼' 등의 방송에 출연하고 활명수 등 각종 광고 CM송도 불렀다.

워커힐 무대에 1년간 출연한 뒤엔 미8군 쇼로 옮겨갔다. '봄비'의 박인수와 함께 걸출한 솔 보컬로 호평받았다.

그는 "고교 2학년 때부터 엄청 바빠졌으니 공부와의 인연은 고 1때 끝났다"며 "한양대 연극영화과 1학년 중퇴로 나오는데, 그때 필기시험을 본 뒤 스케줄로 인해 실기시험에 늦게 가 아예 보질 못했다. 그러니 잘못된 정보"라고 이 사실을 처음 정정했다.

그는 1969년 '그 사람 떠나가고'를 시작으로 1970년 키보이스가 반주한 '진정 난 몰랐네'를 잇달아 내며 펄시스터즈, 정훈희와 함께 대표 여가수로 활약했다.

이후 지구레코드로 옮긴 그는 작곡가 박춘석과 손잡고 1971년 '잊었을거예요'와 '잊어야 할 사람'을 냈고 '진정 난 몰랐네'까지 뒤늦게 크게 히트하며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다.

호사다마일까. 그는 가수 인생 수난의 시작으로 1975년 '대마초 파동'에 휘말린 때를 꼽았다. "대마초 혐의가 있는 가수들과 함께 공연하러 다닌 죄밖에 없었기에 억울했지만" 1980년까지 5년간 방송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1974년 첫 결혼을 하고 몇 개월 만에 이혼한데다,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면서 그는 "억울해서 약도 먹었다. 그때 이후 억울한 일이 생기면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고백했다.

공백기 동안 노래가 하고 싶었던 그는 창을 배우러 다녔다. 비로소 방송 정지가 풀렸지만 수중에는 돈이 없었고 스스로 초라해져 있었다고 한다. "애써도 안 되는 건 하늘의 뜻"이란 생각에 1981년 제 발로 교회를 찾아 지금은 독실한 크리스천이 됐다.

그는 "난 처음부터 인기가 있었고 나밖에 몰랐다"며 "나만 챙겨주던 엄마 덕분에 두 남동생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를 가지며 나를 돌아봤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 그간 동생들이 마음 아파할까 봐 말을 안 했는데 이젠 해도 될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가수로서의 기회는 1984년 한 번 더 찾아왔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에 무게여~'란 노랫말이 방점을 찍는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가 사랑받았다.

"이 곡은 처음에 가스펠 같았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노래, 제 한계를 뛰어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데 딱 그런 곡이었죠."

그는 지금도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각종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영화 '독도수비대' 제작에 10여 년째 매달린 동생 이민용 감독의 뒷바라지도 했다.

그는 "남편이 없고 낳은 자식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우리 엄마도 그랬다. 누군가 집에 오면 내복과 용돈을 챙겨줬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종로에서 학사주점을 운영했다. 2009년 세상을 뜬 어머니가 "네 앨범에 노래 하나만 하고 싶다"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게 한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넌 하늘이 준 목소리로 노래 실컷 하라'고 하셨어요. 아프지도 말고 오늘까지 능력 발휘하고 내일 밤 자듯이 떠나라고 하셨죠. 그게 유언이었어요."

굴곡진 인생에도 어머니 덕분에 큰 고생을 안 했다고 말하는 그는 다시 태어나도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내가 좋아서 택한 길이니 후회는 없다"며 "인내도 지혜도 없던 시절 대신 열심히 노래했고, 때론 잘하려다 오버해 못 미칠 때도 있었다. 노래는 내 소리로 세상에 내놓은 자식 같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어제도 행복했고 오늘은 가장 행복하다"며 "그런데 엄마만 없다"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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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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