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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가나댁' 글라디스 "방송 보고 남편도 놀라"

송고시간2015-07-13 07:00

KBS '저녁 생생정보'서 전국 탐방…"솔직한 모습 보여줘"

KBS '저녁 생생정보'에 출연 중인 '가나댁' 글라디스
KBS '저녁 생생정보'에 출연 중인 '가나댁' 글라디스


(안산=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KBS 2TV '저녁 생생정보'의 전국 탐방 코너에 고정 출연 중인 가나 출신 글라디스 씨. 2015.7.13
okko@yna.co.kr

(안산=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한 상 가득 차려진 여수 한정식을 앞에 두고 '역시 전라도야'라는 말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남해의 전복 물회를 복스럽게 먹고, 강원도 콩밭에서 처음 만난 어르신에게도 거리낌 없이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KBS 2TV '저녁 생생정보'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가나댁' 글라디스(37)의 이야기다.

1년 넘게 여행 정보 코너를 이끄는 그는 토박이 한국인보다 더한 넉살과 활기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지난 8일 경기도 안산 자택에서 만난 글라디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본명은 글라디스 티무티 알하산(Gladys Timuti Alhassan). 방송에선 거칠 것 없는 자유인의 모습이지만 이래 봬도 한국 생활 10년차의 어엿한 주부다.

'가나댁'이란 별명에서 짐작하듯 아프리카 가나가 그의 고향이다.

한국인 남편과 사이에 여덟 살배기 딸을 둔 글라디스는 지인을 통해 방송계에 발을 들인 뒤 2012년 KBS 1TV '러브 인 아시아'와 2013년 MBC TV '우리는 한국인'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 '저녁 생생정보'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대본대로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생생정보'에서는 내가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카메라 앞 가나댁에게 '내숭'이란 없다. 강원도 산골 마을부터 제주도 바닷가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못 먹는 음식 앞에서는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정에 PD와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를 가리지 않는 넉살과 호탕한 웃음은 낯선 이조차 금세 무장해제시킨다.

원래 조용한 성격이라는 그는 "카메라에 불만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생기가 생긴다"면서 "때로 남편도 깜짝 놀랄 정도"라며 웃었다.

글라디스가 보여주는 '먹방'은 프로그램의 백미다. 가리는 음식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절로 출출해진다.

"촬영팀이 때마침 제가 배고플 시간에 맞춰서 촬영해요. 그러면 저절로 맛있게 먹게 돼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 음식을 잘 못 먹었는데 지금은 날음식을 빼고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어요. 이제는 집에서 한국 요리만 하다 보니 가나 요리법을 잊어버렸어요.(웃음)"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스튜어디스를 꿈꾸던 그는 14년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사업차 가나에 머물던 남편은 친구의 가게에 놀러갔다가 맞은편 가발가게에서 일하던 글라디스를 보고 호감을 느꼈단다.

글라디스 역시 먼 아시아에서 온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언어의 장벽'은 이들에게 문제가 안 됐다.

"저는 한국어를, 남편은 영어를 잘 못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소리가 나는 전자사전이었죠. 전자사전에 각자 원하는 단어를 입력하면서 대화를 나눴어요."

낯선 나라 한국은 그에게 곧 가까운 나라가 됐다.

그는 "나에게 잘해주는 남편을 보면서 한국 사람은 따뜻하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5년간 교제한 뒤 2006년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온 글라디스는 시댁의 거센 반대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극복했다.

"당시 시어머니가 문도 안 열어줄 정도로 반대가 심했어요. 하지만 제가 임신을 하고 부른 배를 안고도 아픈 시아버지를 위해 죽을 만들어오는 걸 보면서 '웬만한 한국인 며느리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지셨어요."

한국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던 글라디스는 딸이 태어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TV 드라마는 그에게 최고의 한국어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능숙한 한국어를 자랑하는 그는 "딸 때문에 한국어를 잘하고 싶었는데 뒤늦게 혼자 공부하다 보니 쓰기와 읽기 실력이 좀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지인의 소개로 시작한 방송 활동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하이(Hi)'라는 인사에도 별 반응이 없던 한국인들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단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사람들이 알아볼 때면 계속 웃으며 인사를 해야 해서 힘들기도 해요. 입 근육이 아플 정도죠. 하지만 실물이 훨씬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아요."

그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이 사람들에게 엄마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다.

"예전에는 딸이랑 외출하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희를 다르게 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그럴 때면 사람들에게 저도 그냥 똑같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요. 피부색은 다르지만 당신이 피가 모자라면 피를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어딜 가도 '가나댁' 글라디스로 봐주니 괜찮아요. 딸과 남편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라디스는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는 방송 일을 하고 있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꾸준히 하고 싶다"며 "딸도 잘 키우면서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게 꿈"이라고 밝게 웃었다.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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