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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극주의 주창자 프리마코프 前 러시아 총리 사망(종합)

옐친 정권서 외무장관·총리 역임…유고 공습에 항의 방미 중도 취소하기도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다극적 국제질서의 주창자로 유명한 러시아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前) 총리가 26일(현지시간) 지병으로 숨졌다. 향년 85세.

프리마코프의 손자 예브게니 산드로는 현지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확인했다. 프라마코프는 그동안 고령에 따른 건강 악화로 병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위대한 관료이자 학자이고 정치인이었다"고 추모하면서 고인의 유족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공보수석)가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프리마코프가 1998년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다극주의 주창자 프리마코프 前 러시아 총리 사망(종합) - 2

1929년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태어난 프리마코프는 중동 전문가로 1980년대 외교 아카데미 산하 동방학 연구소와 국제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을 지냈다.

러시아 최고의 중동 전문가로 손꼽힌 그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초중반 대외정보국 국장을 거쳐 1996~98년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외무장관 시절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하고 다극적 국제질서를 주창하면서 러시아의 국익을 지켜내는 강성 실용주의자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8년 총리로 임명된 뒤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러시아의 경제 위기 극복에 앞장서면서 코소보 분쟁에 따른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을 저지하려 애썼다.

이듬해 3월 총리로서 미국 방문 길에 올랐던 그가 대서양 상공 위를 비행하던 중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 개시 보고를 받고 곧바로 전용기를 돌려 모스크바로 돌아온 일화는 '대서양 회귀 사건'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회자된다.

프리마코프는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을 '중대한 역사적 실수'라고 강하게 비판했으며 그의 대서양 회귀는 러시아가 친서방 노선을 버리는 대외정책 전환의 분수령이 됐다.

국민의 신뢰와 지지에 힘입어 한때 옐친 대통령의 후계자로도 거론되던 그는 1999년 5월 총리에서 해임됐다. 프리마코프의 커지는 영향력과 인기에 위기의식을 느끼던 옐친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푸틴을 후계자로 내정한 데 따른 결과였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푸틴 대통령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위험이 고조되자 전쟁을 막기위해 프리마코프를 이라크 특사로 파견하는 등 중동 전문가로서 그의 능력을 활용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은 프리마코프를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단호하게 맞서면서 다극주의를 실현하고 러시아의 이익을 지켜내려 한 애국적 정치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cjyo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06/26 21:5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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