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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0-9로 대패했지만…"힘내라 대∼한!민!국!"

송고시간2015-06-17 05:00

<역사속 오늘> 0-9로 대패했지만…"힘내라 대∼한!민!국!" - 2

(서울=연합뉴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 무대를 처음으로 밟은 것은 1954년 스위스대회 때였다.

당시 아시아 지역 예선에 한국과 일본, 중국이 출전을 신청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중국이 기권하면서 한일전만 열렸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왜놈들이 한국땅을 절대 밟지 못한다"며 일본팀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예선 2경기를 모두 일본에서 치렀다. 장택상 대한축구협회장이 경기 전 "왜놈들에게 지는 날이면 전원 현해탄(대한해협)에 투신하라"고 압박한 가운데 대표팀은 1차전을 5-1로 이긴 뒤 2차전을 2-2로 비겨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월드컵 본선 첫 상대는 하필 강호 헝가리였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등 국제대회 32연승을 달리고 있던 헝가리는 최강팀 중 하나였다. 6월 17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헝가리와의 첫 경기에서 한국은 0-9로 졌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월드컵 최다 점수 차 패배 기록이다. 사흘 후 터키와의 2차전도 0-7로 져 0승2패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선수단 22명 중 9명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경기 수 시간 전에야 취리히에 도착했을 정도로 준비가 부실했다.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비난보다는 격려를 받았다. 대표팀 골키퍼 홍덕영(1926∼2005)씨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회의가 열린 스위스 시민들은 한국 대표팀 숙소에 헌옷과 초콜릿 등을 담은 위문품을 보냈다.

▲오늘의 소사(小史)

- 1885년 = 프랑스가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뉴욕 도착

- 1970년 = 부산항과 일본 시모노세키 항 잇는 부관페리 개통

- 1972년 =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 1988년 = 대학생 전방 입소교육 폐지

- 1994년 = 미국 미식축구 O.J. 심슨, 전처 살해 혐의 체포

- 2008년 = 강화도 모녀 납치살해 사건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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