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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송고시간2015-06-10 07:00

산업화 첫 걸음 된 '경제개발 5개년' 1차 계획 잇단 위기 극복 무역규모 세계 8위로 도약고도성장기 사회·경제 시스템, 개혁과제로 부상

<광복70년> 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 1

(세종=연합뉴스) 이상원 박초롱 기자 = "이 나라를 복구하는 데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다."

해방 5년 만에 발발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돌아본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예상은 당시 그랬다.

그러나 전란 속에서 한국을 구한 맥아더 장군의 예측은 틀렸다.

미래가 없어 보이던 최빈국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놀랄 정도의 빠른 성장세를 구가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탈바꿈했다.

매몰찼던 평가는 '한국의 경제발전사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기 소르망 전 프랑스 파리대학교 정치학연구소 교수)이라는 찬사로 바뀌었다.

광복 이후 70년간 한국 경제가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비상을 거듭한 결과다.

◇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으로 '한강의 기적'

한국이 1955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에 가입할 당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65달러. 아프리카 최빈국인 가나, 가봉에 뒤지는 수준이었다.

외국의 원조에 의존해 가까스로 전쟁 이후 혼란을 극복하고 경제 성장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산업화의 첫 걸음은 1962년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1차 계획으로 뗐다. 당시는 실업률이 25% 가까이 치솟던 때다.

<광복 70년> 반세기만에 10대 경제대국으로
<광복 70년> 반세기만에 10대 경제대국으로

(서울=연합뉴스)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국내총상산(GDP) 기준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광복 이후 70년간 한국 경제가 위기와 도전, 비상을 거듭한 결과다. 조선·반도체·철강·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한 한국은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공여국이 됐다. 사진은 평택ㆍ당진항 국제자동차부두에 수출 차량으로 가득 찬 모습.<< 연합뉴스DB >>

종잣돈 마련을 위한 차관을 얻는 대가로 광부와 간호사들이 1963년부터 대거 독일로 갔다. 관객 1천400만명을 끌어모은 영화 '국제시장' 속 덕수와 영자다.

'수출주도형 경제 발전'을 성장 전략으로 잡은 정부는 수출만 잘 된다면 무차별적 지원을 하다가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금융부분은 광범위하게 통제해 정책지원에 필요한 자금을 배분·조달했다.

일부 건설기업들은 해외로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며 '중동 붐'을 일으켰다.

당시 정부 지원에 힘입어 크기 시작한 삼성과 현대, LG, SK 등이 지금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1차 경제개발 계획 마지막 해인 1966년 11.9%로 처음 두자릿수 시대를 연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제2차 계획(1967∼1971년) 때 10.0%, 제3차 계획(1972∼1976년) 때는 10.2%에 이르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을 바탕으로 경제를 부흥시킨 독일 '라인강의 기적'에 빗대어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 무역규모 세계 8위…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육박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한 1980년대엔 대외개방을 시작했고 1990년대 이후 정보기술(IT) 기업,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조선·반도체·철강·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한 가운데 한국은 1996년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2009년엔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원조를 받던 최빈국이 공여국이 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2010년에는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 이견을 좁히는 '중간자' 역할을 굳혔다.

1인당 국민소득은 60년전의 434배인 2만8천180달러(2014년)로 늘어났다. 명목 국민총소득은 1953년 483억원에서 작년 1천497조원으로 3만배 넘게 불었다.

<광복 70년> 반세기만에 10대 경제대국으로
<광복 70년> 반세기만에 10대 경제대국으로

(서울=연합뉴스)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국내총상산(GDP) 기준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광복 이후 70년간 한국 경제가 위기와 도전, 비상을 거듭한 결과다. 조선·반도체·철강·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한 한국은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공여국이 됐다. 2010년에는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 이견을 좁히는 중간자 역할을 굳혔다.
사진은 지난 2010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하는 모습. << 연합뉴스DB >>

1차 경제개발 계획을 시작할 때 1억달러가 안됐던 수출은 지난해 5천730억달러로 컸다. 1964년에 1억달러어치를 수출하는 데 307일이 걸렸다면 지금은 세 시간 남짓이면 되는 셈이다. 수출과 수입을 합친 무역규모는 지난해 전 세계 8위다.

외환보유액도 1960년 1억6천만달러에서 지난달 기준 3천715억달러를 기록, 세계 6위 수준으로 증가했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1956년 불과 4억원 규모에서 1977년 1조원을 돌파했고 1993년엔 100조원까지 늘어났다. 현재 시가총액은 1천320조원 수준이다.

◇ 도전과 응전의 역사

쉴 새 없이 달리는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도전과 응전이 반복된 위기 극복의 과정이었다.

광복 첫 위기는 한국전쟁(1950년)이었다. 한국전쟁의 피해 규모는 68억4천만달러로 1953년 국민총생산(GNP) 40억8천만달러의 1.7배 규모에 달했다. 한국은 미국의 원조를 바탕으로 기간산업을 복구하고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세웠다.

1970년대 초에는 세계와 국내 경기가 악화하면서 기업부실 위기를 맞았다. 당시 기업들은 연 50% 이상의 사채에 의존해 경영했다. 상당수 기업이 사채업자들의 어음교환 요구로 언제 부도 위기에 몰릴지 몰랐던 상황이었다.

정부는 1972년 8·3 사채동결 조치로 기업과 사채권자의 모든 채권·채무를 무효화시키고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정부의 결단으로 기업 재무구조는 개선됐고 주식·채권시장 육성의 발판이 마련됐다.

1973년과 1978∼1982년에는 1, 2차 오일쇼크를 겪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1차 쇼크 당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973년 3.2%에서 1974년 24.3%로 뛰었다. 2차 오일쇼크 때에는 10·26 사태까지 발생해 충격이 겹쳤다.

정부는 강력한 물가 안정 대책과 중화학공업 육성, 중동 건설 진출 등으로 위기를 넘었다.

<광복 70년> 반세기만에 10대 경제대국으로
<광복 70년> 반세기만에 10대 경제대국으로

(서울=연합뉴스)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국내총상산(GDP) 기준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광복 이후 70년간 한국 경제가 위기와 도전, 비상을 거듭한 결과다. 쉴 새 없이 달리는 동안 한국의 경제 성장은 도전과 응전이 반복된 위기 극복의 과정이었다. 광복 후 한국전쟁과 1970년 초 기업부실 위기, 1973년과 1978~1982년 1,2차 오일쇼크,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위협 등 여러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사진은 19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나라살리기 금모으기'운동. << 연합뉴스DB >>

198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노사분규가 급증했다. 근로자 권리와 보상은 개선됐지만 노사 대립이 고착화됐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위험과 맞섰다. 3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이 무너지고 은행도 문을 닫았다. 인력 구조조정으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고 외채를 갚을 돈이 없어 정부가 IMF에 손을 벌렸다.

정부는 대기업간 사업교환인 빅딜과 워크아웃 등으로 기업과 금융 부문의 과감한 구조개혁을 추진했고 국민들은 자발적인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고통 분담에 나섰다.

수백만명의 신용불량자(채무불이행자)를 양산한 2003년 카드사태도 큰 시련이었다. '길거리 모집' 등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회원 모집과 정부의 부실 감독이 빚은 사태였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도 한국 경제를 위협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위기 이후 강화된 건전성이 큰 방패 역할을 했다.

대기업과 은행의 양호한 재무건전성, 엄격한 주택담보대출 관리 등이 위기를 약화시켰다. 위기를 다른 국가에 비해 빨리 극복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 계속되는 위기, 새로운 비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선진국 문턱에 선 한국은 기존 산업의 성장 한계, 종신고용 붕괴, 저출산·고령화, 재정 적자 심화, 경제성장률 저하, 심각한 사회 갈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경제는 항상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왔다.

외환위기 직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수장으로 경제 정책을 이끈 강봉균 전 장관은 "한국은 과감한 개방 등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못하던 것들을 해내 선진국 문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며 "선진국들이 힘들어하는 구조개혁에 성공하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빠질 것이라고 비관할 것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여 노동력 부족 현상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지금은 경직된 노동시장 등 고도성장기에 맞춰진 사회·경제시스템을 유연하게 바꾸는 작업을 진행할 때"라며 "동시에 해외에서 부가가치를 찾아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야 새로운 위기가 찾아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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