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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분노범죄'는 존재감 상실과 양극화 때문

송고시간2015-04-12 06:10

"좌절 나누고 서로 소통·배려하는 사회 분위기 절실"

극단적인 '분노범죄'는 존재감 상실과 양극화 때문 - 1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 아내를 살해하고서 시신을 무참히 훼손해 유기한 시화방조제 토막살인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살해 수법이 너무 잔인하고 범행 동기가 아주 평범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분노에 의한 살인·방화사건이 최근 부쩍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의 치안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극단적인 분노 범죄의 원인을 놓고 단순한 '개인사'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잔혹 범죄로 표출되기까지 분노를 쌓게 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되짚어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 탓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지닌 사람들이 늘고 여기에 인명 경시 풍조까지 더해지면서 야만적인 분노범죄가 빈발한 것으로 분석한다.

홧김에 생기는 범죄를 줄이려면 일차적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스트레스나 분노를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양극화 해소로 박탈감을 최소화하는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조용하고 성실했는데"…주변 평 무색게 한 엽기살해

토막살인을 저지른 중국동포 김하일(47)은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인 평범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살던 동네에서 그를 아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직장 동료의 말을 빌리면 대략적인 유추를 할 수 있다.

입사 때부터 지켜봤다는 한 동료는 "일하는 4년 동안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고 지각이나 무단결근도 안 했다. 워낙 말수가 없었지만 맡은 일만큼은 성실히 했다"고 증언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스타일이었다는 의미다.

이런 그가 왜 가장 가까웠던 아내를 살해하고 그것도 토막 내 내다 버렸을까.

그는 경찰에서 "야근하고 집에 와 씻고 자려는데 아내가 계속 자신의 계좌로 돈을 부치라고 해서 홧김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가 살해 순간의 전부라고 한다면 그는 '충동장애'였을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충동장애로 치료를 받은 환자는 5천544명으로 2010년보다 14.4% 늘었다.

충동장애가 자존심과 엮이면 분노범죄가 유발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회에서의 미미한 존재감으로 자괴감이 쌓이면서도 평소 참고 살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필요 이상으로 폭발해 버리는 유형이다.

심리상담전문가인 권수영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교수는 "사회에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면 처음에는 참는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을 건드리는 사건이 있거나 참을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면 감정이 터진다"고 지적했다.

주전자의 물이 서서히 끓으면서 어느 순간 뚜껑이 덜컥대는데 내면을 조절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극단적인 분노 표출의 대상이 가족으로 향하는 것 역시 존재감이 미미한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공격하려는 데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있다. 감정을 마음껏 분출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손석한 박사는 "열등감이나 불만이 있을 때 약자를 찾아 성취하려 하는데 뜻대로 안 되면 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심화하는 양극화의 이면…상대적 박탈감도 원인

분노범죄의 원인을 분석할 때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병리현상의 단면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분노범죄를 개인의 정신장애로만 푸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분노범죄라는 게 표면적으로는 개인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사회 양극화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배 교수의 생각이다.

이웅혁 건국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실업과 소득불균형 등으로 사회적인 분노가 계속 쌓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다. 중국동포는 더더욱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배상훈 교수는 "중국동포는 한국에서 하층에 속하다 보니 내연녀나 가족, 주변을 지나가는 여성에게 분노를 푸는 경향이 있다"며 "분노범죄가 양극화에 따른 문제라는 인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제발전으로 물질·경쟁 사회가 되면서 상대적인 비교가 늘고, 그로 인한 분노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나만 억울한 것 같고 그 때문에 분노범죄가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빠름을 과도하게 숭배하는 현대 디지털사회의 속도지상주의도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김종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즉흥적이고 빠른 것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외부의 자극을 참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토로할 데가 없다…"소통과 배려 분위기 절실"

김하일은 직장에서 조용했고, 동네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직장생활을 했지만 사실상 '은둔형'인 셈이다.

평소 분노 등을 표출할 공간이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소통과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권수영 교수는 "자신의 깊은 좌절이나 무력감 등을 평소에 나눌 대상이 많으면 극단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손석한 박사는 "힘들 때 분노의 마음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지도층부터 배척과 경쟁보다 약자를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사회 전반의 분노가 누그러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금주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이, 정부는 사회 전반적인 분노를 파악해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가진 이들이 소통하고 이해하는 노력 역시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honeyb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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