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배너

[실시간뉴스]

최종업데이트YYYY-mm-dd hh:mm:ss
검색

나이지리아 부하리, 한물 간 퇴역장성에서 다시 권력정점에

"일등공신은 보코하람, 이등공신은 조너선"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선 승리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선 승리(AP=연합뉴스) 31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대선·총선에서 전 군부 통치자 무함마두 부하리 후보가 이끄는 제1야당 범진보의회당(APC)이 승리했다고 나이지리아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8일 나이지리아 다우라에서 부하리 후보가 투표를 마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AP Photo/Ben Curtis, File)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류일형 특파원 = 쿠데타로 집권한 지 2년 만에 다시 쿠데타로 쫓겨났다가 4번의 도전 끝에 화려한 컴백.

30년 만에 나이지리아 대통령 자리로 돌아온 무함마두 부하리의 파란만장한 정치 이력이다.

젊은 날의 화려한 이력에도 그는 사실 이번 대선에 출마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72세의 노령이고 30년 전 쿠데타로 쫓겨난 한물 간 퇴역 장군에 불과했었다.

게다가 2003년·2007년·2011년 선거 때마다 출마해 1등에 '하프 게임'으로 패해온 만년 2등 정치인 정도가 그의 주된 이미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달라지게 만든 '1등 공신'은 보코하람이고, '2등 공신'은 라이벌인 굿럭 조너선 대통령이란 우스갯소리가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다.

보코하람과 같은 극단주의 세력과 맞서는 데 그의 군 경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감이 그에게 표를 몰아줬다는 것이다. 여기다 과거 집권 당시 강조했던 청렴·강직한 이미지도 상승작용을 했다.

국민을 가장 지긋지긋하게 하는 보코하람 척결에 실패하고 잇달아 터지는 거액 뇌물 추문으로 곤욕을 치른 조너선 정부는 역설적이지만 부하리에게 반사적 이익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이지리아 북부 카치나 주 다우라에서 부유한 상인의 23 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란 부하리는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영국에서 사관학교를 나온 뒤 나이지리아 육군에 입대, 1976년 이후 오바산조 군사정권하에서 보르노 주지사, 석유장관, 국영 석유공사 총재 등을 지내며 정치에 눈을 뜨게 된다.

육군 소장이던 부하리는 1983년 12월 민간정부의 부패 및 경제정책 실패를 이유로 무혈쿠데타를 일으켜 셰후 샤가리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구정권 인사에 대한 군사재판, 화폐 개혁, 국민기강 확립 운동 등을 펼쳐나갔으나 재판절차 없이 인신을 무기한 구속할 수 있는 비상조치 단행, 언론통제, 경제 실패 등으로 1985년 8월 바방기다 소장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훈련되고 엄격한 자세로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는 부하리는 기독교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철저한 무슬림으로서의 명성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ryu625@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04/01 08:37 송고

광고
댓글쓰기
배너
광고
광고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산업/경제
사회
전국
스포츠
연예ㆍ문화
세계
더보기
AD(광고)
AD(광고)
광고
AD(광고)

위키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