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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옳다 믿었다" "두려운건 현실안주" 리콴유 어록(종합)

"약한 지도자나 지지도 집착"…언론자유·사생활 침해 정당화도
향년 91세를 일기로 23일 타계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전 총리 (AP=연합뉴스 자료사진)
향년 91세를 일기로 23일 타계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전 총리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백나리 기자 = "여론조사를 해보라. 진정 국민의 바람이 무엇인가. 과연 원하는 기사를 쓸 권리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주택과 의료, 일자리와 학교이다"

향년 91세를 일기로 23일 타계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만큼이나 다양한 어록을 남겼다. 특히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까지 나라의 경제기적을 일군 지도자인 그의 어록에는 배불리 먹기 위해 권위적 통치가 불가피하다는 정치관이 짙게 녹아있다.

그는 여론조사에 대해 "나는 결코 여론 및 지지도 조사 등에 과도한 관심을 두거나 집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약한 지도자일 뿐이다. 지지율 등락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도자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어느 자리에서는 권력 쟁취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16세기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될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될지 사이에서 나는 늘 마키아벨리가 옳다고 믿었다"며 "아무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의미 없는 존재"라고 단언했다.

엘리제궁 방문한 리콴유
엘리제궁 방문한 리콴유
(AP=연합뉴스) 싱가포르의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23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91세. 리 전 총리는 지난달 5일부터 심한 폐렴증세로 입원치료를 받아왔었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 자치정부 시절부터 독립 이후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내면서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부국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10월 6일 리 당시 멘토장관이 프랑스를 방문, 엘리제궁에서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특히 리 전 총리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집과 의료, 직장과 교육'이라고 강조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경시하는 태도를 가감 없이 드러내곤 했다.

다음은 리 전 총리가 생전 남긴 주요 발언들을 AFP통신과 BBC방송 등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싱가포르의 통합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구와 선출된 정부의 주요 목적에 종속돼야 한다."(1971년 6월 국제언론인협회 총회 연설에서)

▲"나는 시민의 개인적 삶에 간섭한다는 비난을 종종 듣는다. 그래,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 치의 후회도 없이 말하는데 당신의 이웃이 누군지,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당신이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언어를 쓰는지 같은 아주 개인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경제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1986년 국경일 연설에서)

▲"이웃나라들처럼 하면 죽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남들에 비해 내놓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다르고 나은 것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청렴이고 효율이며 성과주의다. (이런 것들은) 효과가 있었다."(2007년 8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리콴유와 메르켈 獨 총리
리콴유와 메르켈 獨 총리
(AP=연합뉴스) 2011년 6월 1일 리 전 총리가 싱가포르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다음 세대에 말해야겠다. (이전 세대가) 이뤄놓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그간의 발전이) 영구적인 것이라고 믿으면 모두 무너질 것이고 두 번째 기회는 없을 것이다."(2010년 9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내가 한 것 전부가 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 고결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현실 안주다.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이 원하는 경향이 있다."(1970년 연설에서)

▲"말썽꾼을 정치적으로 파괴하는 게 나의 일이다. 내 가방 안에는 매우 날카로운 손도끼가 하나 있으며 만약 말썽꾼과 겨루게 된다면 나는 손도끼를 사용할 것이다."(1997년 야당 지도자 J.B. 제야레트남에 대해)

▲"그녀 없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다만 그녀가 89년의 인생을 꽤 잘 살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겠다. 하지만 마지막 이별의 이 순간 내 마음은 슬픔과 비탄으로 무겁다"(2010년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가 별세하자)

shi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03/23 17:4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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