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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공동묘지에 92년째 잠들어 있는 애국지사 황기환

송고시간2015-02-23 06:00

미국과 유럽에서 '조선독립' 외교전 펼치다 요절7년전 묘비 발견됐지만 유해 송환 '지지부진'

뉴욕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황기환 애국지사
뉴욕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황기환 애국지사

(뉴욕=연합뉴스) 박성제 특파원 = 뉴욕 퀸즈 매스페스의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있는 애국지사 황기환의 무덤. 7년 전 뉴욕 동포들에 의해 발견됐고 2년 전에는 국가보훈처가 확인작업까지 마쳤으나 아직 황 지사의 유해는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일 황 지사의 비석은 눈에 파묻혀 쓸쓸함을 더했다.
높이 50㎝도 안 되는 자그마한 비석에는 '대한인' '황긔환지묘' '민국오년사월십팔일영면'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이름 가운데 글자인 '기'는 당시 표기를 따라 '긔'로 표시됐고, '민국오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5년인 1923년을 나타낸 것이다.

(뉴욕=연합뉴스) 박성제 특파원 =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돼 조선 독립을 주장했던 황기환 애국지사가 92년째 뉴욕의 한 공동묘지에 쓸쓸히 잠들어 있다.

조국 독립을 위해 낯선 땅에서 싸우다 유족도 없이 요절한 황 지사의 무덤이 7년 전 동포들에 의해 어렵게 발견됐지만, 그의 유해가 조국 땅으로 돌아갈 날은 아직 기약이 없다.

황 지사가 묻혀 있는 곳은 뉴욕 퀸즈 매스페스에 있는 165년 된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Mount Olivet Cemetery).

황 지사의 무덤은 이 묘지의 가장 서쪽인 '웨스트 론'(West Lawn)에 자리 잡고 있다.

공동묘지 정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한참을 가야 다다르는 이 구역에는 비석이 작거나 아예 없는 무덤도 많아 다른 구역보다 초라한 느낌이 들고 있다. 황 지사의 무덤은 이 구역에서도 가장 끝자리에 있다.

높이 50㎝도 안 되는 자그마한 비석에는 '대한인' '황긔환지묘' '민국오년사월십팔일영면'이라는 세로 글귀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차례로 적혀 있다.

바로 아래에는 'EARL K. WHANG'이라는 영문 이름과 'BORN IN KOREA', 'DIED APRIL 18. 1923'라는 문구가 가로로 차례차례 새겨져 있다.

이름 중간 글자인 '기'는 당시 표기에 따라 '긔'로 적혀 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기준으로 산정한 '민국오년'이라는 연도 표기는 비석을 세운 동포들의 독립 염원을 담은 느낌이다.

1995년 '애국장'에 추서돼 독립운동을 인정받은 황 지사는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마흔 살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데다가 젊은 나이 탓에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김규식, 서재필, 이승만 등 당대 지도자급 독립운동가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주로 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황 지사는 평안남도 순천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설립한 주파리위원회의 서기장을 맡아 김규식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후 주파리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장 대리를 차례로 맡아 유럽 국가들에 조선 독립을 호소했으며 1921년에는 미국으로 돌아와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황 지사의 출생연도와 날짜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의 사망자 인적사항을 보면 사망 당시 나이가 '40'으로 돼 있어 1882년 또는 1883년에 태어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 입구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 입구

(뉴욕=연합뉴스) 박성제 특파원 = 황기환 지사가 잠들어 있는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의 입구 모습. 165년된 이 묘지에는 황 지사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석이 없어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공부를 하려고 미국으로 건너왔다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에 자원입대해 연합군으로 참전했다는 사실도 교인들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황 지사는 결혼하지 않아 유족이 없다.

뉴욕의 한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이후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서거 이후 몇 년 동안은 애국지사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졌겠지만, 점차 기억에서 멀어져 갔고 결국 묘지의 위치조차 잊힌 것으로 짐작된다.

수십 년 동안 잊혔던 황 지사의 무덤이 재발견된 것은 뉴욕한인교회 담임목사를 지낸 장철우(76) 문화재찾기 한민족네트워크 뉴욕지회장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뉴욕한인교회 70년사'라는 책에서 교회 초창기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문구를 본 뒤 교회 청년들과 함께 무명의 한국인 무덤을 찾아 헤맸다.

"2008년 가을이었습니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는 구역의 비석을 일일이 확인하다 한글로 된 황 지사의 비석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이후 장 회장은 1년에 두 번씩 황 지사의 무덤을 찾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조상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설을 1주일가량 앞둔 지난 11일에도 하얗게 눈이 덮인 묘지를 찾아 기도를 올렸다.

뉴욕 일원에서 오래 생활한 동포들도 황 지사가 누구인지, 황 지사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장 회장을 포함한 몇몇 뜻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무덤을 찾는 교포들이 거의 없다.

장 회장은 황 지사의 유해가 아직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무덤이 발견된 지 7년,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애국지사의 무덤을 확인한 지 2년이 되도록 외국 공동묘지의 한구석에 내버려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2년 전 묘지를 직접 찾았던 국가보훈처는 황 지사의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 현충원에 안장하겠다는 방침은 세웠지만, 아직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족이 없어 다른 애국지사의 송환과는 달리 절차가 복잡하다는 게 국가보훈처의 설명이다.

유족이 없으면 한국 정부가 유해 송환을 위한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법원의 승인을 받아 송환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형식적인 절차를 이유로 송환이 늦어지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국가보훈처는 가능하면 올해 안에 황 지사의 유해를 송환하겠다는 방침을 뒤늦게 세운 것으로 알려져 광복 70주년인 올해 황 지사가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su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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