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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근 "이제야 아버지 마음 알게 돼…이제야"

송고시간2015-02-15 08:40

KBS '가족끼리 왜이래' 차순봉 역 열연으로 시청자 가슴 적셔"차순봉 통해 참 많이 배워…딱 알맞은 때 이 작품 한 듯"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인터뷰 장소로 들어서자 '차순봉'이 앉아있었다.

2월의 오후 햇살을 등에 환하게 지고 앉은 차순봉은 방금 드라마 속에서 걸어나온 듯 인자하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약속은 이름 석자만으로 설명이 되는 배우 유동근(59)과 했는데, 두부장수 차순봉이 미소를 지으며 맞아주니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가 순간 모호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나니까 집에 들어앉아 꼼짝도 하기 싫은 거예요. 왜 이러지? 싶던 차에 강은경 작가와 문자를 주고받았어요. 강 작가한테 내 기분을 전하니 '여운이겠죠'라대요. 그러면서 '아쉬운 만큼 여운을 즐기세요'라고 하더군요. 아…. 이거였구나 싶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 속이 시원해졌어요. 차순봉의 여운이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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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경력 35년, 천하의 유동근도 이렇게 진한 여운에 휩싸이게 한 캐릭터이니 시청자는 오죽했을까.

지난 8일 자체 최고 시청률인 43.3%를 기록했고, 바로 15일 저녁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KBS 2TV 주말극 '가족끼리 왜이래'의 아버지 차순봉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마지막 촬영을 마친 유동근을 최근 남산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는 눈부실만큼 따사로운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굽이굽이 긴 이야기를 막힘없이 술술 풀어냈다. 마치 오랜세월 품어왔던 의문과 숙제를 후련히 해소한 듯, 비 온 뒤 맑아진 하늘처럼 개운한 얼굴이었다. 차순봉으로 산 지난 8개월은 물론이고, 혈기방장했던 20대까지 시간은 거슬러올라가 그의 인생 이야기와 연기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다.

그는 "이제야 아버지 마음을 알게 됐고, 이제야 날 돌아보게 됐다. 딱 알맞은 때에 이 작품을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 "우리 아버지가 내 결혼 못보고 돌아가셨어요. 근데 아버지 장례식에서 집사람과 재회했죠."

'가족끼리 왜이래'는 일찍 상처하고 홀로 삼남매를 키워온 차순봉이 어느날 자식들에게 불효소송을 제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아버지가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시한부 판정을 받은 차순봉은 죽기 전 자식들과 조금이라도 더 살가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병은 숨긴 채 고육지책으로 전대미문의 불효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볼효소송이라는 게 언뜻 이해가 안됐어요. 근데 강 작가가 풀어가는 이야기의 전개가 기가 막히더라고요. 차순봉과 자식들의 부딪힘과 만남이 하나하나 풀어지는데 우리 모두 이구동성으로 감탄했어요. 그러면서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나도 우리 아버지께 달봉이처럼 말썽을 부리고 강재처럼 뻣뻣하게 굴었던 게 생각이 나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서운하고 섭섭하셨을까 싶으니 그렇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제야 아버지 마음을 알게 된거죠. 이제야. 그러나 뒤늦었지만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이제라도 알게 돼 속이 시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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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작품 하면서 하나하나 정리가 됐다. 별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저 전화 한통, 얼굴 한번 보여주는 것을 바라셨던 건데 그걸 못해드렸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은 그저 잘 해드리지 못했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번 대본을 보면서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어요. 어쩜 그리 내 손을 잡고 길 안내를 잘해주는지…. 강 작가의 글을 보면서 치유가 되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더불어 이런 게 가족이구나 새삼 깨달았고요."

그렇게 자식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작고하면서 아들에게 평생 배필을 짝 지워줬다.

"우리 아버지가 내 결혼도 못 보시고 돌아가셨어요. 근데 옛날 얘기를 하자면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우리 집사람과 내가 재회를 했어요. 내가 별얘기를 다 하네.(웃음) 그 당시 헤어짐 아닌 헤어짐으로 만나지 않고 있었는데 집사람이 아버지 장례식장에 온 거죠. 그렇게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우리 사이가 예전보다 더욱 돈독해졌고요."

유동근과 전인화(50)는 그런 과정을 겪어 1989년에 결혼한다. 슬하에 둔 1남1녀는 이제 각각 23세, 22세가 됐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차순봉처럼 다가갈 수 있었어요. 그런 저를 아이들이 안아주더라고요. 전에는 고민이 있어도 아이들과 그런 얘기를 하는 걸 꺼려했는데, 드라마에서처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얘기를 하면 못할 게 없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가족끼리니까 이야기할 수 있는거고 더 해야하는 거죠. 참 많이 배웠어요."

극중 차순봉은 이런 말을 했더랬다. "사랑은…사랑이라 말하지 않으면 사랑인 줄 모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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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률 40% 정말 고맙더라고요. 나이 먹어 철들어서인지 이게 귀한거구나 깨달았습니다."

1980년 TBC 공채 23기 출신으로 강산이 세번 바뀔 동안 줄곧 연기를 해온 유동근은 "인복이 많았다"고 말했다. 부인 전인화는 물론이고, 고(故) 유열 작가와 양인자 작가, 김수현 작가, 고 김재형 PD, 고 신현택 삼화프로덕션 회장 등이 그의 입에서 나온 '고마운 분'들이다.

'구가의 서'에 이어 '가족끼리 왜이래'로 호흡을 맞춘 강은경 작가 역시 그의 '인복'에 추가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집사람 추천으로 '구가의 서'에서 이순신 역을 했는데 그때 강 작가의 필력을 봤어요. '가족끼리 왜이래'가 들어왔을 때 강 작가가 쓰고 아버지 이야기라고 하길래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또 마침 제작사가 삼화프로덕션이었고요. 그렇게 들어간 작품인데 첫 촬영날 희한하게도 마치 오랫동안 작업했던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더니 계속 좋은 대본이 여유있게 나왔고 전창근 PD의 편안한 연출의 리더십이 어우러지면서 정말 힘들지 않게 8개월이 흘러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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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근은 "주인공이 시한부면 신파로 풀기 쉬운데 우리 드라마는 끝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자연스럽게 찾아갔다"며 "가족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시청자로 하여금 '그래 우리가 바라던 게 바로 저거였어'라는 생각이 들게 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정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송사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방송사와 제작사 모두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야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현장 제작진들도 어디서 답을 찾아야하나 답답해하고요. '가족끼리 왜이래'는 두서없는 막장이 범람하는 현실 속에서 소박하고 소탈한 일상에서 발췌를 잘 해서 접근하면 '역시 된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인물마다 불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어요. 여러가지로 던져주는 메시지가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인'(1996) '용의 눈물'(1996) '야망의 전설'(1998) '명성황후'(2001) '아내'(2003) 등으로 절정의 시청률과 인기를 맛보았던 유동근이다. 그런 그가 새삼 이렇게 작품과 시청률에 고마워하는 것은 35년 주연으로 안방을 누빈 자의 깨달음일 것이다. 그런 고마움을 담아 표현한 차순봉의 연기는 시청자의 가슴을 적셨다.

"차순봉을 제가 해낼 수 있었던 것도 '무자식 상팔자' 등 앞선 작품들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죠. 연기는 재주 가지고는 안돼요.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좋은 인연들이 있었기 때문에 차순봉도 탄생했죠. TV 드라마는 절대 어느 누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 "시한부? 1983년 교통사고로 1년 병상에 있었어요. 잘못하면 평생 걸을 수 없다고 했죠."

차순봉은 시한부를 판정받고도 가족에게 내색을 안했다. 남은 시간 가족의 일상에 돌을 던지지 않고 늘 그랬듯 '오늘'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동근은 "나라도 차순봉처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2년 전 사선을 넘었던 경험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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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3년 대형 교통사고로 6개월간 병상에 있었다. 전신마취만 10여 차례 했다. 의사는 "잘못하면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아가 다 부서졌어요. 그때 임플란트라는 개념이 어딨어. 양끝에 철사줄을 감은 통틀니를 그때부터 했습니다. 당시 제일 무서웠던 게 수술실 들어가는 복도의 하얀 천장이었어요. 누워서 그걸 보고 있으면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가족에게 티를 못내겠더라고. 미안해서. 매번 웃으면서 수술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수술한 후 중환자실에서 혼자 깨어났을 때 엄청 울었죠. 아프고, 서럽고. 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웃었어요. 재활치료 하면서 목발을 짚고 다니느라 겨드랑이가 다 헐어도, 틀니 끼고 말을 하는 연습을 하느라 입안이 다 헐어도 웃었어요."

"임플란트를 한 지금도 내 이가 아니기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대사하는 게 영 힘들다. 사극의 경우는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같은 대사를 수십번씩 떠들어야한다"는 그는 "그래서 사극에서 도망가고 싶은데 돌아가신 김재형 PD님이 날 계속 불러냈다. '너는 배우'라면서. 그러다 '용의 눈물'까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정도전'의 이성계도 그런 고통 속에 나온 연기였다.

"차순봉도 말했지만 오늘처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귀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정신이나, 육체적으로 일상의 컨트롤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시간까지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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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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