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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女 대통령 보좌한 '왕실장' 김기춘 '마침표'>

1년6개월만에 물러나…'기춘대원군' 등 별명 얻어朴대통령 "드물게 사심없는 분" 두터운 신임 실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의 수용으로 18개월만에 물러나게 됐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박 대통령의 4개 부처 개각 단행을 발표하면서 "김기춘 실장은 그동안 몇 차례 사의를 표명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이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후임 비서실장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김 실장은 곧바로 청와대에서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비서실장 자리는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당분간 공석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선임 수석인 현정택 정책조정수석이 대행을 맡을 것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설 연휴 이후 후임을 임명할 계획이며, 휴일 동안 시급한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공석으로 놓아둘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김 실장의 퇴임은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8월5일 청와대에 들어온 지 1년6개월 만이며, 지난달 12일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서실장 교체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36일 만이다.

개각 발표하는 윤두현 수석
개각 발표하는 윤두현 수석(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17일 오후 춘추관에서 소폭 개각 내용 발표를 마친 뒤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의 표명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초대 비서실장인 허태열 전 실장이 4개월 남짓 근무했으니 현 정부에서는 최장수 비서실장으로 재직한 셈이다.

이는 그만큼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실장에 대해 "정말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또 "가정에서도 참 어려운 일이 있지만 자리에 연연할 이유도 없이 옆에서 도와주셨다"며 병상에 있는 김 실장의 아들 등 개인사까지 언급한 뒤 "제가 요청하니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청와대에 오셨다"고 예우를 갖췄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신임 속에 김 실장은 '왕실장', '기춘대원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사실상 당정청을 장악한 국정의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

경남 거제 출신인 김 실장은 경남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 드물게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모두 지냈으며, 15·16·17대 국회의원, 이회창 전 대선 후보 특보단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국회 법사위원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김 실장은 이처럼 화려한 이력뿐 아니라 박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과거 행적 등으로 인해 임명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는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모친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지냈고, 2012년 6월에는 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검사 시절인 1974년 육 여사 살해범인 문세광 사건을 조사했으며, 박 전 대통령 말년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해 '부녀 대통령'을 모두 보좌하게 된 것도 박 대통령과 깊은 인연의 한 대목으로 꼽힌다.

<父女 대통령 보좌한 '왕실장' 김기춘 '마침표'> - 3

특히 김 실장은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을 돕는 친박(친박근혜) 원로그룹인 '7인회'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972년에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유신헌법 초안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점이나 법무장관이던 1992년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의 당사자로 관권선거와 지역감정 조장을 주도했던 점, 2004년 국회 법사위원장 시절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면서 탄핵 소추위원으로 활동한 점 등의 이력은 야권의 반발을 샀다.

이 때문에 김 실장은 재임 기간 수차례 사퇴 압박에 시달려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물러날 때는 이른바 '찍어내기' 논란의 한복판에 섰고,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국무총리 후보 연쇄 낙마를 비롯해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잇단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론도 계속 불거졌다. 특히 지난해 말 정치권을 뒤흔든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문건파동 때도 일찌감치 수습을 하는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일면서 퇴진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김 실장이 박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며 정권이 안착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76세의 고령임에도 현안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의사결정이 신속·정확해 청와대를 장악하면서 당과 정부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끌어내며 원활한 국정운영의 기반을 닦는데 헌신했다는 것이다.

min22@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02/17 17:0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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